▲ 서 헌 철 목사

세종과 소헌 왕후의 맏아들로 태어나 장차 대권을 이어받아야 하는 세자 ‘향’은 건강이 그리 좋지 못했지만, 세자빈 휘빈 김씨를 통해 여자를 알게 된 세자가 두 번째로 맞이한 빈은 ‘봉빈’이었다 그러나 세자가 그를 철저하게 외면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사실 봉빈을 처음 맞이했을 때 세자는 미모가 출중한 그녀를 무척 사랑했다. 그런데 부부간의 정을 미처 쌓아 올리기도 전에 봉빈이 세자의 잠자리 능력에 불만을 품고는 노골적으로 내색했다. 역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봉빈의 불만이 워낙 노골적이다. 보니 부담을 느낀 세자가 점점 그 구실을 못했다. 그리하여 봉빈으로부터 멀어진 세자는 마음씨 고운 궁녀 순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순임이라는 나인은 본시 세자빈처 소속이었다. 그러나 세자빈 봉씨가 마음에 두고 있던 다른 나인으로 바꾸니 순임이는 자연 세자의 처소로 자리를 옮겨 갔다. - 결국 시골처녀 순임이는 세자의 은총을 입게 되었고, 세자의 씨를 잉태하게 되었다. 세자빈 봉 씨로부터 죽지 않을 만큼 고문을 받기도 한 순임이는 봉빈이 무서웠다. 장차 자신에게 어떤 벌이 내려질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어린 소녀 순임이는 결국 마지막으로 자기가 가야 할 곳을 정하기에 이른다. 연못에 풍덩 뛰어들어 아귀 전쟁터 같은 궁중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아가야, 미안해. 우리가 편안해지는 길은 이것밖에 없단다.” 그런데 순임이가 연못으로 뛰어들려 할 때였다. 어느 결에 달려왔는지 세자가 순임이의 몸을 덥석 잡았다. “너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냐?‘ “놓아 주셔요, 저 같은 죄인은 죽어 마땅합니다.” 순임이는 세자의 손을 뿌리치려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허약하다 해도 장성한 남정네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오래지 않아 순임이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세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순임이를 꾸짖었다. “네가 죽으면 난 어찌한단 말이냐. 봉빈이 있다지만 그 사람에게선 마음이 떠난 지 오래이다. 내겐 너뿐이니라. 그러니 다시는 이런 못된 짓 하지 말거라. 알았느냐?”

그즈음 봉빈은 실로 은밀하고 놀라운 생활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세자의 발길이 멀어지자 가지가 부리던 나인을 강압하여 술과 동성연애(同性戀愛)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동궁전 궁녀 순임이가 세자의 씨를 잉태하였고 임금과 왕후로부터 며느리로 인정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파르르 몸을 떨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 이런 와중에 산달을 맞이한 순임이는 애석하게도 딸을 낳았다. 그나마 봉빈에게 심한 고문과 매질을 당한 탓인지 앙증맞은 어린 생명은 바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나 봉빈은 갈수록 방자해져서 세자의 출입도 거절한 채 술과 동성연애로 세월을 보내던 봉빈의 행각이 차츰 궁내에 퍼졌다. 그러한 이야기를 접한 세자는 그냥 묻어둘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왕과 왕비에게 봉빈의 행각을 남김없이 실토했다. 그 사실이 확인되자 폐출이란 결정이 매려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여느 임금들이었다면 봉씨를 사사시켰을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하지만 본디 어진 임금이다 보니 세종은 봉빈을 사가로 돌려보내는 선에서 모든 일을 마무리 지었다.(출처 : 조선의 시지프트들)

작금에 대한민국도 동성애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하며, 특히 그리스도인들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것임에도 ‘국제앰네스티’ 등 권고 사항이라는 벽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26)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 : 26-27)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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