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승 자 목사

요즘 한국사회에서도 교회를 부정적인 종교집단으로 보려는 시각이 높다. 특히 지식이나,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부정적인 시각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지난 선교초기부터 일본제국주의시대, 해방, 6.25전쟁 이후 보리고개, 70년대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개신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이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당시 국민들에게는 교회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의 이웃이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다. 또한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한국교회는, 개화기에는 개화의 등불로서, 일본제국주의 아래에서는 나라의 독립과 자주를 위한 투쟁의 장으로서, 한국전쟁과 그 이후 재건의 시기에는 전쟁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충실한 종으로서, 그리고 이승만 이후 계속된 국사독재정권 아래서는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투쟁의 장으로서 인식되어 왔다.

당시 노동현장에서 박해를 받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바로 종로5가 기독교회관이다. 이들은 이 회관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런 개신교가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교회는 스스로 게토화되기 시작했고, 개신교회는 일반인들에게 유럽교회와 마찬가지로 ‘멀쩡하지 않은 사람들의 집단’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개신교회가 하나님나라운동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1980년도 이전까지 한국교회는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교회, 이들의 권익을 대변해 주는 교회, 나눔과 섬김의 선교를 실천하는 교회, 분단된 조국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는 교회, 전쟁의 상흔을 딛고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교회는 자기 게토화에 빠져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개신교인들의 잘못된 선교형태를 들 수 있다. 전도한답시고 지하철이나, 서울역 관장에 시뻘건 십자가를 단 옷을 입고, ‘예수 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모습은, 피곤하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기는커녕, 심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다음은 기독교란 이름을 내세운 소종파들이 허황된 말세론을 퍼트려 사람들의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고, 극단에 가서는 비정상적인 일을 저지르게 했다. 당시 맹신도들은 전재산을 팔아 사이비교주에게 받쳤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말세는 오지 않았다. 전재산을 바친 맹신도들 중 재산을 돌려달라고 법적 싸움도 벌였지만, 그것은 허사였다. 이들중 수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목회자들의 설교내용이 건전하고 상식적이며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목회자들의 왜곡된 교회관과 선교관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교회관과 선교관은 예수님이 벌이신 하나님나라운동에서 이탈, 인본주의적이고, 공로주의적으로 변질되었다.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공로주의에 근거한 왜곡된 면죄부 장사와 투쟁했다. 또한 에라스무스의 인본주의라는 적극적 사고와도 투쟁했다. 이러한 업적주의와 공로주의는 오늘날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모든 것을 성과에서만 판단하게 하는 가치관을 만들고, 그 결과 사람들을 경쟁과 업적주의의 노예로 만들었다.

이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이다. 교회의 목회자들은 업적주의와 공로주의에 길들여진 나머지, 교회성장론에 매몰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형교회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제 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순수한 신앙, 이웃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한다.

햇빛중앙교회•본지 후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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