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6일 현충일과 6·25 한국전쟁 발발일 등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호국보훈의 달로 지킨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6월 호국보훈의 달에 나라 뿐 아니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들의 정신을 되새기고 그분들이 남긴 믿음의 유산을 후대에 전승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시기이다.

주기철 목사는 일제의 기독교 탄압에 온몸으로 맞선 한국교회 대표적인 순교자이다. 주기철 목사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공개적으로 거부해 설교 금지령을 받았고 1938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모진 고문 끝에 옥중에서 순교했다.

장로교 총회가 일제의 강요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가결했을 때도 주 목사는 신사참배는 주님을 배반하는 우상숭배라며 끝까지 거부했다. 1935년 금강산 수양관에서 열린 집회에서 주 목사는 “목사는 일사각오(一死覺悟)를 가질 때 예언자의 권위가 서는 것”이라며 “교회 지도자가 일개 순사 앞에서 쩔쩔매서야 되겠는가”라며 서슬이 퍼런 일본 경찰 앞에서도 당당히 설교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리는 손양원 목사는 1938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줄곧 여수의 나병환자 요양원인 애양원에서 나병환자들을 돌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죄목으로 1940년 일경에 체포되어, 해방이 된 후에야 출옥하였다.

애양원교회에서 시무하는 중에 1948년 10월 여수·순천반란사건이 나고 두 아들이 공산분자에 의하여 살해되자 오히려 그 범인의 목숨을 구명하여 원수를 양아들로 삼은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손양원 목사는 6·25전쟁 때 피신하지 않고 나병환자들 곁을 지키다가 공산군에 체포되어 미평에서 순교하였다.

순교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진 박해 끝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땅 끝까지 흩어져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자의 길을 갔다. 바울 사도는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하∼21)라고 고백하고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사도 베드로도 내가 어찌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달려죽을 수 있겠느냐며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

이 같은 초대교회 사도들의 거룩한 순교정신은 초기 한국교회를 세우는 밑바탕이 되었다. 일제의 기독교에 대한 압제와 핍박이 심할수록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삶과 죽음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던져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함”이라는 강한 믿음의 확신 때문이었다.

아직도 지구 저편에서는 IS등 회교 과격분자들에 의한 테러로 인해 지구촌의 평화가 깨어지고, 북녘 땅에서 신앙의 자유는 요원한 일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 거룩한 순교의 피가 교회를 세우는 기초가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것은 순전히 예수를 믿기 위해 때로 사자 굴에 던져지고 불태워진 순교자들의 흘린 피 덕분이다.


그러나 어찌 순교만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겠는가. 믿음의 절개를 목숨을 바쳐 지키는 순교가 먼 남의 영웅담으로 느껴지는 현실에서 우리 모두는 오히려 세속에 빠져 믿음의 도를 잃어버린 나를 비우고 내 속에 그리스도를 채우는 소중한 시간으로 6월을 맞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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