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중 곤 목사

모든 종교의 본질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평화이며, 사랑이다. 기독교에 있어서 사랑과 평화, 그리고 정의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도 크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 유교에서 말하는 ‘인’,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 그것을 확대해 보면 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평화’이다. 예수님은 태어났을 때를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성격화 했다.

그런데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오늘의 상황에서나, 과거나, 평화적 종교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느냐는 것이다. 기독교는 내용적으로 사랑과 평화, 그리고 정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종교이다. 그 책임은 원인은 서구인들에게 있다. 기독교가 뒷받침 하지 않았던들, 이렇게 세계역사가 피로 물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가 제일 많이 피를 흘렸고, 전쟁을 유발시켰다는 것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가장 많은 피를 흘리고, 전쟁을 유발시킨 이유 중 하나는 집단의식 때문이다. 기독교는 국가의식이나, 계급을 초월했다는 면에서 어느 종교보다도 강하다. 그러나 집단의식에 너무 고취돼 타종교에 대해서 아주 배타적이었으며, 이것은 평화를 깨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는 ‘우리 집단’, ‘내 것’, ‘우리’를 내세운다. 거기에는 기독교가 이스라엘 전통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집단성을 생각하면,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웃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종교 간의 갈등과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전쟁까지도 불사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민족에 대해서 매우 배타적이다. 이들이 호전적인 민족이 된 것은 선민사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강한 집단의식이 되어서 전쟁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약해서 침공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 호전적으로 전쟁에 적극적이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전쟁’이다. 이 이름아래 많은 전쟁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집단의식을 확대 발전시켰다. 민족의 영역은 아니지만 새로 된 기독교의 조직을 새로운 이스라엘로 규정했다. 우리는 선택받은 집단이다. 이것이 오랫동안 뿌리를 내려서 ‘나’가 아닌 것은 나쁘다. ‘나’ 아니면 ‘원수’이다. ‘관념’이 되어 버렸다. 코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화 한 이래, 기독교는 국가권력과 야합할 수 밖에 없었다. 집단의식이 정치구조적인 것이 되어 전쟁과 피를 흘리는 요인이 된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기독교는 세계화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관념화’의 역할이다. 종교는 관념이 매개가 되어 나 자신을 관념화 해 버린다. 종교가 관념화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어떤 관념을 뒤받침 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선’이나, ‘악’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서 ‘선’과 ‘악’을 규정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과 다르면 악으로 규정해 버린다는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선’과 ‘악’은 사실과 다르게 유리된 또 하나의 유령이 되어 현실을 규정해 버린다.

이렇게 해서 싸움과 다툼,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이런 경우 적대자는 사람이 아니다. 뿔 달린 악마이다. 사람들에게 사랑이니, 인이니, 자비를 말해도 이해하지를 못한다. 이런 관념화는 언제나 종교가 앞장서서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언제나 종교를 내세워 적대의식을 고취시킨다.

오늘 회교국가에서 일어나는 전쟁, 제1세계의 지원 아래 벌어지고 있는 전쟁 등을 보면 종교라는 이름아래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6월 보훈의 달 다시 한 번 평화와 자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예장 합동총신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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