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종교인에 대한 불신과 비판이 늘어가는 가운데, 과학도 종교에 대해 말이 많다. 종교와 경쟁하는 분위기가 거세다. 경쟁을 해야 하는가를 별 문제로 하더라도 과학계의 움직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진화론과 뇌과학 등 과학으로 무장한 소위 신-무신론자(neo-atheist)들은 과학적 믿음만이 믿음의 윤리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면서 종교적 믿음을 비판하고, 종교사의 여러 암울한 이야기나 종교인들에 대한 각종 사회조사 결과를 통해서 종교를 비판하고 있다.

이럴 때 그들에게 과학적인 태도로 일관하려면 신의 비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응수할 수 있다. 반증 가능한 가설이 과학적 가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학적 가설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을 취하여, 과학의 입장에서 과학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차드 도킨스는 “신의 존재는 다른 모든 가설처럼 과학적이다”라고 선언하면서 단지 유전자(gene)와 진화를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라, ‘문화유전자’ 개념을 만들고 밈(meme)이라고 부른다.

유전자의 경우 유전자가 깃든 주인(개체)이 유전자에 얼마나 공헌하는가에 따라 선택 여부가 달린 것처럼, 문화유전자의 경우에도 개인의 정신에 살고 있다가 밈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다른 정신으로 자기 복제해서 전파되는 ‘문화단위’라는 것이다. 억지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신봉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진화론이라는 이론 안으로 종교를 영입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종교라는 영역을 이런 식으로 폐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종래에도 종교의 사회학이나 인류학이 종교를 하나의 사회과학적 연구대상으로 삼아 연구해왔지만, 그 영역의 이론 안으로 종교 전체를 ‘삼키려고’ 시도하진 않았다. 이런 식으로 과학 속으로 들이켜서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있는가하면, 과학과 분리시킨 채 과학이라는 잣대로 종교를 격파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믿는 그대로 살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이런 입장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의 이름으로 종교사에서 그리고 현재 일어나는 엄청난 일들은 신앙 자체에서 나온 게 아니라, 오히려 신앙으로 치료해야 할 욕심과 증오와 공포 등이 일으킨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런 입장에 대해서 종교비판론자들은 이런 종교온건주의야말로 공적 담론에서 합리적 대화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런 온건주의자들은 다른 믿음을 서로가 존중할 수 있게 되면 평화가 열린다고 믿고 있는데 사실은 종교과격주의자들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약컨대, 종교를 비판하는 데 대해서 종교인들은 이렇게 대응한다. 종교에 대한 사회조사를 통해서 밝혀진 것을 가지고 종교를 비판하는 데 대해,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는 아니지 않느냐고 대응하고, 종교가 악행이나 부패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오류라고 대응하고, 더욱이 일부 구성원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덕스러운 다수까지 싸잡아 집단을 매도해선 안 된다고 대응한다.

그러나 여전히 반대편에서는 과학적이지 않은 그 믿음 자체가 문제라고 보면서 그런 믿음을 폐기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종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가지고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악용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인간들의 문제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종교와 과학 간의 논쟁에 대해 몇 가지 꼭지로 살펴봤다. 과학과 과학철학계의 분위기를 본 것이다. 최근 철학계에서는 ‘무신론적인 종교(atheistic religion)’에 대한 논의도 왕왕 이루어지고 있다. 그건 그렇고 이런 분위기 속에 가톨릭계에서는 새 교황이 선출되어 교계의 새로운 분위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종교 지도자들도 사람이니 그런 사람을 믿지 말고 신을 믿으라고만 말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로스 도우셋(Ross Douthat)은 이렇게 말했다.

“교단에서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도덕적 이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목자들로부터 ‘내가 행하는 대로가 하니라 내가 말하는 대로 하시오’라는 것을 일정 부분 수용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자. 그렇지만, 동일한 도덕적 이상을 공유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도자들이 말하는 대로 살지 않는 종교계 제도나 기관을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도우셋의 말은 가톨릭에 대해서이니만큼 여기서 말하는 도덕적 이상은 금욕이고 비판의 요지는 성학대나 부패를 두고 하는 말이니 그 쪽 이야기라고 넘어가긴 힘들다.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필 필요성이나 기독교계에서 리더의 중요성이야 진실로 진실로 막중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흐리지도 본받지도 말고 이끌어야 하는 일이니까.

강명신 박사(강릉원주대 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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