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결국 성경적인 메시지가 사라지고 자기 교회만을 정당화하게 되면, 목회적 성공을 추구하는 상업주의마저도 분별하지 못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종교개혁자들의 메시지에 경청해서 과연 우리가 누구인가를 겸허하게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부패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예민하게 제시했던 종교개혁의 정신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 어느 누구도 예외적일 수 없다는 개혁자들의 성경적인 인간론을 뼈저리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종교개혁은 성직자 중심주의와 성례주의의 허상을 깨고, 인간의 본성과 본질에 대한 엄숙한 재발견이었다.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은 기독교 신앙의 갱신만이 아니라,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죽은 것과 다름이 없던 중세 로마 교회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되살려 내었고, 이로 인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정신이 발현되게 하는 등 인류 역사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무수한 박해 속에서 순교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짓밟혀서 거의 소멸되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수난을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들이 부르짖은 진리가 살아서 성도들의 심령 속에 새 힘을 불어넣었다.

기독교 신앙이 새롭게 꽃을 피우게 되자, 중세말기 사람들에게 구원과 생명의 교훈을 제시하여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일대의 사건들이 벌여졌다. 그 당시 사람들은 변화의 열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세 말기의 교회는 권위주의를 내세우면서 아무런 변화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로마 교회의 강압적인 조치를 발동하여, 그 어느 누구도 성경을 모국어로 읽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사건은 전혀 사람의 계산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던 일이요, “우발적으로”(accidental reformation) 발생하였다. 그 누가 계획하거나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연속된 토론들과 사건들을 통해서 개혁신앙을 알리는 계기가 주어졌고, 그 때마다 루터의 주장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게 되어졌다. 인쇄술을 발달과 함께 비텐베르그 출판사는 즉각 루터의 논문과 설교를 발간해냈고, 이건 널리 알려졌다. 대학교육의 확대로 지성인들이 늘어났고, 라틴어를 소화해낸 신흥 지도층들은 열열이 지원을 표명했다. 이제 루터의 주장들은 덮어지거나, 말살될 수 없게 확산되어 나갔던 것이다.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유럽 각 도시마다 호응하는 운동들이 일어났고, 점차 변화를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루터가 새로운 교회를 세우자고 주장한 것도 아니요, 로마 교황에 맞서서 싸우려 한다는 선전포고를 한 것도 아니었다. 교회의 권위에 대항하는 반항적 행동을 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죄 사함을 받는 원리가 무엇인가를 놓고서, 적어도 면죄부를 구입하는 선행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다는 점과 사면권의 원칙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루터가 제기한 질문들과 그를 제압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토론들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꺼지지 않는 요원의 불길이 막 지피는 것과 같이, 종교개혁의 서막이 열렸던 것이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