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이한 개신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 모습을 회복했는지 관심가질 필요성이 제기된다. 1517년 당시 천주교의 성서 이탈을 두고 볼 수 없는 개혁가들은 이미 개혁의 필요성을 안고 있던 천주교의 성직자들 보다 앞서 개혁을 단행함으로 개신교회가 탄생했다. 천주교는 교회의 형식은 있었으나 진실이 빠져 버려 모든 운영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한탄한 개혁가들은 당시 서슬이 퍼런 종교 권력에 대항해 죽음을 각오한 결과로 개혁을 실천했다. 개혁가들은 잃어버린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먼저 교권 화 된 교회의 세속화를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사명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기도 했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흘린 피와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길을 따르는 것이 곧 희생의 길인데도 주저 없이 자기 십자가를 져 교회의 터가 되었다. 교회는 이러한 희생과 순교의 터 위에 세워졌음을 성경은 명확히 계시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초기 교회도 구 신교도들의 희생과 순교의 피로 교회의 터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교회 역사가들이 기록하고 있으며, 오늘의 교회 성장은 바로 진리를 위해 순교한 선배들의 희생 덕분이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순수한 영혼을 소유해 자신의 안일무사를 뒤로한 순교자들의 희생을 무색케 하는 교회 행태에 무어라 할 말을 잃는다. 과연 오늘의 교회는 다시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교회를 물려 줄 수 있겠는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후손들에게 교회의 부채만 넘겨주는 꼴이 될까 걱정스럽다. 지금은 빚을 내어서라도 교회의 현대화된 건물을 건축해야 한다고 해서 교회의 모든 재정 능력을 건축에 올인 하고 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교인들이 줄어드는 추세다. 이를 감안하면 한 세대가 지나면 매머드한 건물 유지도 어렵다는 전망이다. 그러면 텅 빈 교회를 무슨 용도로 사용해야 하는 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로마라는 나라가 일천년 후에 멸망 할 것이라는 예측을 일천년 전에 미리 하였더라면 그러한 비참한 멸망의 그늘에서 벗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역사학자들의 넋두리를 듣지 않고도 다른 상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 교회가 아니 세계 교회가 무조건 믿습니다 하고 현실을 외면 하다보면 어느덧 다가온 심판의 문 앞에서 지난 세월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범할지도 모른다. 로마의 멸망은 세속 군주와 성직자의 타락이 결국 먼 미래에 나라를 좀먹는 일이 되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의 기독교회가 먼 미래가 아니라 곧 닥칠 재림 주님의 심판이 눈앞에 인데도 교회의 경건과 성스러움은 퇴보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도는 제대로 진행하고 있는지, 선교는 온전히 실시되고 있는지, 구제는 초대 교회처럼 베풀고 있는지, 교회의 헌금은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예배는 초대 교회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있는지, 교회가 중세 교회처럼 교권을 만들어 서로 군림하거나 성직을 매매하지는 않은지, 강단의 설교가 복음이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지, 아니면 복음은 뒷전이고 설교자의 사심을 가득 싫지나 않았는지, 교회 건물 큰 것을 자랑하고 교인수를 자랑하고 헌금의 분량을 자랑하지는 않은지, 교단의 행사에는 철저히 참여를 하는데 비해 가난한 교인들의 심방은 관심 갖지도 찾아보지도 않은지, 목회자들은 정치에 관심은 있으나 기도와 전도는 뒷전으로 미루지나 않은지, 목사직이 출세의 지름길로 보고 혹 속성으로 목사직을 팔고 사려고 하지는 않은지, 교회의 집기는 성스럽기에 고가품에 헌금을 낭비하고도 아깝지 않은데 비해 구제와 선교는 찔끔 인색하게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은지, 그 외에도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애써 덮고 그저 세상 유사종교들처럼 신도들의 헌금이나 우려먹지나 않은지, 깊이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교회가 세워질 때에 참여한 사도들과 초기 교부들과 성직자들의 행적은 순교의 피 흘림이다. 교회의 참된 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죽음, 그의 제자들의 희생과 순교로 터가 만들어 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교회는 그대로 있다고 하지만 교회가 하는 일이 초대 교회와 같지 않음이 문제다.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는 세상의 종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때문에 급속한 변화는 기대가 무리다. 에스라, 느혜미야와 같이 일신상의 안위를 버리고 오직 나라와 성전 재건을 위해 열정을 불살랐던 정신에서 오늘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옳지 않은가? 재물과 인재가 풍족하고 신자들도 넘쳐나는데 없는 것은 오직 자기십자가를 지려는 희생과 순교 신앙이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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