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자신의 일을 소명(召命)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일을 자신의 삶과 구별할 수 없다. 소명을 지닌 사람에게 일의 목적은 그 일을 통해 소명의 깊은 성취(fulfillment)를 얻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소명에 대한 정의를 ‘다른 사람을 향한 가치와 목표를 주요 동기로 삼아 목적의식과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특별한 역할을 지향하도록, 자기 너머에서 기인하는 초월적 부름’이라고 한다.(Dik & Duffy, 2009).

소명의 정의에는 ‘초월적 부름’, ‘삶의 목적과 의미 추구’ 그리고 ‘친사회적 동기’라는 세 요소가 포함되는데, 이때 초월적 부름은 신(神)이나 사회적 요구와 같은 외적 요인뿐 아니라, 내적 성찰을 통해 발견되는 내적 부름(called)까지도 아우른다.

미국의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커 파머(Parker J. Palmer, 1939~)는 소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명은 듣는 데에서 출발한다. 소명이란 성취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선물이다.”

오늘의 신자들은 소명(calling)을 성취해야 할 목표쯤으로 생각하여 예배에 잘 참석하고, 교회에서 정한 종교적 행위를 다하면 그게 우리들의 소명을 완수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어떤 목회자들은 소명을 말할 때 목회의 목표만을 말한다. 나의 목회철학, 나의 목회신념, 나의 목회방법이 중요하며 그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무조건(?) 순종하여 앞으로 전진 할 것을 요구한다. 주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 자들에게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며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바 있다.(마 7:22. 23)

마가복음 6장 7절에서 주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고, 권능을 주어 세상으로 보내신다. 이 7절 말씀에 두 동사가 쓰이는데,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사’ ‘ 보내시며’이다. ‘부르셨다’는 것은 소명이고, 임무를 맡겨 ‘보냈다’는 것이 사명이다. 여기서 ‘보내시며’는 어떤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며, 그 사명을 이루는데 필요한 보내는 자에게서 비롯된 권위를 부여하여 보낸다는 의미를 가졌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소명자들이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는 사명자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는 자들이 된다. 어떤 막연한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며 나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따라 살며, 실천하는 사명 자들이 되는 것이다.

부르시고, 보내시는 소명과 사명의 역사는 사람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 가운데 이루시는 역사다.

주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는 방법이 독특하시다.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신다.(막 6:7; 눅 10:1; 행 13:2; 15:27, 39)주님께서는 굳이 왜 둘씩 보내셨을까.

당시 유대인들은 어떤 사건을 입증하기 위해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세워 그 증언의 확실성을 확고히 했다. 둘은 증인의 수(數)이며(신19:15), 두세 사람이 같은 증거(證據)를 제시할 때 그 증거와 증언을 사실(fact)로 인정했다. 그러므로 둘씩 짝지어 보낸 것은 주님의 증인으로 본 바를, 체험한 바를 객관적으로 말하라는 의미이며, 복음 증거의 현장에서 서로가 돌보아 격려하며, 서로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듣는 사람들 편에서도 한 명보다 두 명이 보다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사명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 하는 것이다. 사명자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 내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본 바를 말하여 증거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사명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하라고 하면 그 누군가를 온갖 것으로 설득하려고 애를 쓴다. 증거는 교회를 다니도록, 우리 교회에 나오도록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설득은 전도가 아니다. 증거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과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들어내고 전하는 것이지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엄밀하게 그 설득(?)은 성령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으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증거 즉 복음의 도(道)를 전하는 것은 내 삶의 고백을 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죽음이 나를 엄습할지라도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는 것이 증인이요, 전도라면 극단적인가.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목사(Bonhoeffer, Dietrich. 1906~1945)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도들도 그렇게 죽음의 명령을 받았고, 감당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진리만을 증거하고, 그 증거 때문에 십자가의 그 어떤 고난과 고통이 오더라도 감당하는 이 세대로 보냄을 받은 사명 자이어야 한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소명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가 진리를 증거하고, 그 진리 때문에 겪는 십자가의 길을 감당할 수 있는 사명 자이기를 기대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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