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20대 젊은 시절의 얘기이다. 나는 임신 중인 아내와 함께 고아들을 돌보며 생활을 꾸려 가고 있었다. 그 대, 아내는 고아원의 차디찬 냉돌에서 아기를 낳아야 했다. 그리고 고아들이 먹고 연명하는 대두박을 끓여 먹는 수박에 없었다. 그 대 나는 한 젊은 종교인으로서 품었던 이상(理想)이 하나의 천박한 감상주의가 아니었는지를 심각하게 반성하고, 좀더 쉽게 인생을 사는 길을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뜻밖에, 사복(私服) 입은 형사가 뛰어들어 집 수색을 하고, 나를 강제로 연행하여 경찰서 감방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었다. 어두운 감방 안에는 뼈만 앙상하여 몰골이 말이 아닌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들은 내게 손을 내밀어 담배를 달라고 했으나, 내게는 그런 것이 있을리 없었다. 그들은 나를 발길로 차며 변기통 위에 앉혔다. 그 곳이 나의 자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온몸이 몹시 가려워서 견딜 수 없었다. 일부러 그 안에서 기른 듯한 이들이 잔뜩 기어올라 내 몸을 뜯기 시작한 것이다. 감방 안의 생활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때는 오직, 주먹만한 수수밥덩이가 들어오는 시간과 고문을 당하러 가면서도 햇빛을 잠깐 보는 그 시간뿐이었다. 낮인지 밤인지, 날씨가 흐린지 맑은지도 구별할 수 없는 그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죽을 수 있는 자유마저 빼앗긴 삶은 벌써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죽어가면서 “물, 물”하고 외치는 그들에게 물 한 모금 안 주는 간수들은, 몸속의 피가 이미 독사의 독으로 변해버린 존재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 절망의 심연에서, 나는 내가 믿는 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 때까지 내가 믿었던 신의 얼굴이 내게서 허무하게 사라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순사들은, 충칭에 임시정부가 잇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나를 그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로 취조하는 것이다. 하루는 수사관이 새벽 두시쯤 나를 불러내었다. 그리고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 얘기를 꺼내며, 나에게 독립 운동자가 아니라면 성전(聖戰) 완수에 협력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민중 계몽에 나서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내 눈에는 추방당한 신(하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출처 : 중학 국어 2008.)

7월 3일은 강원용(1917년 7월 3일 ~ 2006년 8월 17일)목사의 출생 100돌을 맞이하는 해가 된다. 그동안 우리는 신학적 갈등 때문이었을까 젊은 세대들 중에는 ‘강원용’ 목사를 잘 모르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필자 역시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7월을 맞이하며, 경동교회 ‘채수일’ 목사의 글(국민일보 2017년 6월 2일자)을 보면서 중학교 국어참고서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어서 먼지 속의 책장에서 꺼내들고 ‘강원용’ 목사에 관한 글을 다시금 일어 보았다. 그는 또한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나 다른 종교들도 성실하게 믿기만 하면 구원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나는 이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자기 종교 안에 구원이 있다는 주장이 없는 종교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런 주장이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것인지, 다른 종교를 열린 자세로 대하는지에 있다.”(출처 : 목회와 신학 2010.06.04.)라는 주장 등을 하기도 함으로 교계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으며, 역대 대통령들에게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그러한 언행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게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었을까? 정계, 신학계 등, 그의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도 다양하게 표출 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그가 일제의 극악(極惡)한 고문(拷問)에 굴복(屈服)하지 않고 신앙의 정절(信仰의 挺節)을 지켰다는 점은, 신사참배, 정교유착 등으로 양지만을 걸어온 일부 교계 지도자들을 생각하면, 종교개혁(宗敎改革) 5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자기(自己) 목숨을 얻는 자(者)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爲)하여 자기(自己) 목숨을 잃는 자(者)는 얻으리라(마 10:39)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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