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소항

밖으로 벋기보다
속을 내준 작은 포구
해감내와 비린내가 꿰미에 걸릴 동안
느릿한 구름 배 한 척
무자위에 걸려 있다
한때는 누구든지 가슴 푸른 바다였다
갈마드는 밀물썰물 삼각파도 잠재우는
소금밭 퇴적층 위로 젓갈빛 놀이 진다
제 몸의 가시 뼈도
펄펄 뛰는 사투리도
함지에 절여놓은 천일염 같은 사람들
골 패인 시간을 따라
뭇별이 걸어온다

▲ 문 현 미 시인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는 말이 이 시에 잘 어울린다. 곰소항이라는 시 제목을 보면 독자는 이미 지명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곳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곰소항은 전라북도 부안에 있는 항구이다. 곰소라는 명칭은 곰처럼 생긴 두 개의 섬이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시를 한 번 주욱 읽어 내려가면 마치 곰소항에 있다는 착각이 들만큼 풍경의 묘사가 돋보인다. 자연에 대한 시인의 관찰력으로 인하여 한 점 아름다운 수채화같은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밖으로 벋기보다 속을 내준 작은 포구”이기 때문에 무척 아늑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구름 배 한 척 무자위에” 걸린 탁월한 묘사를 통하여 염전이 있는 곳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이어서 “소금밭 퇴적층 위로 젓갈빛 놀”이 지니 더 확실해진다. 시인은 바닷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해감내와 비린내”가 꿰미에 걸리는 시간을 헤아리고 있다. 바쁜 스케줄에 매달려 시간이 어찌 지나가는지 느끼지 못하는 도시인들과는 달리 느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느림의 시간 속에서라야 대상에 대한 관찰을 오래 할 수 있고 깊이 꿰뚫어 볼 수가 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소금꽃이 피는 곰소항에는 뜨거운 햇살 아래 시간 가는 줄도 잊은 채 고무래질을 하는 염부들이 있다. 그들은 비록 힘든 노동의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 속에는 “가슴 푸른 바다”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제 몸의 가시 뼈도 펄펄 뛰는 사투리도” 소금밭에 절여 놓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일컬어 시인은 “천일염 같은 사람들”이라고 명명한다. 그들이 “골 패인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저녁답에는 어느새 떠오른 “뭇별”들이 소금기 묻은 하루를 위로해 준다.  

곰소항에서 만든 천일염으로 담근 젓갈은 맛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 시를 읽는 독자는 서서히 시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어 마치 거기에 있는 듯하다가 조금 지나면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그만큼 대상에 대한 시적 묘사가 선명하고 완성도가 있다는 뜻이다. 하늘을 등에 지고 해풍을 맞으며 억척같이 견뎌낸 포구 사람들이 한없이 가깝게 느껴진다. 이 또한 곰삭은 서정적 전개가 일구어낸 열매일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곰소항에 가 보아야겠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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