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사회는 이웃을 잃어버린 시대, 생명을 잃어버린 사회, 포도주가 떨어진 시대, 인정이 없는 시대가 아닌가(?) 한마디로 오늘 우리사회가 각박하다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죽음으로 몰고 가는 참극이 가정, 일터, 학교, 놀이터 등에서 일어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경남 양산에서 아파트 외벽 보수 공사를 하던 인부 한 명이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아파트 입주자 중 한명이 고공공포증을 잊기 위해 틀어놓은 음악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생명 줄을 끊어버렸다. 다섯 아이를 키우던 가장이 이웃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다섯 아이는 가장 소중하고, 사랑해 주던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아내는 졸지에 남편을 잃어버리고, 비탄에 빠졌다. 가족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충주 칠금동의 한 원룸에서도 80대 노모와 아내, 아들, 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가장이, 평소 인터넷 속도가 느리고 자주 끊기는데 불만을 품고 있던 집주인이 집을 방문한 인터넷 설치기사의 목과 복부 등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또 50대 남자는 자신을 낳아 길러준 어머니를 살해하고, 8년 동안 동거해 온 여자를 살해해 바다에 버렸다. 인천에서는 10대 소녀가 8살 난 아이를 유인해 살해해서 주검을 손상시켜 버렸다. 또한 많은 아이들이 친부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만 봐도, 우리는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단지 시끄럽고,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 부모의 재산이 탐이 나서, 무조건적인 묻지마 살해사건, 아이가 운다는 이유로 죽임당한 우리 모두의 아이, 담임목사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장로의 죽음 등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생명들이 이웃과 가족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 사회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와 존엄성이 상실되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균열이 생겼다. 사회 전체가 개인이기주의와 개별집단주의, 생명경시풍조에 물들어 질병에 걸린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생명이 없는 죽은 사회로 좌초하고 말 것이다. 목회자와 장로들의 입에서, 북한과의 핵전쟁에서 100만명이 죽어도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세태가 되어버린 우리사회, 아니 한국교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는 생명의 존엄성을 그 어디에서도 읽을 수 없다. 예수님은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그런데 목회자와 장로의 입에서 핵전쟁으로 100만이 죽어도 괜찮다고 한다. 이것이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한국교회와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이들은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 평화(샬롬)는 없고, 힘의 논리를 내세운 평화(팍스)만 있다.

정작 누구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야할 교회의 목사가 부인을 살해하고, 딸을 살해하는 상황에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말한다는 것이 오히려 바보스럽다.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키는 것은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생명의 가치를 말하는 단체는 한국교회가 가장 경멸하는 좌경단체이며, 진보단체이다.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의 중요성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결국 생명을 등한시 하는 사회구조가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으며, 그들의 손을 잡아줘야 할 교회가 오히려 그들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다. 따라서 이 땅의 모두가 가장과 아이, 그리고 부인과 엄마를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형상대로 지음 받은 생명,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생명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된다.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는 빈부의 격차나, 생활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며, 사람과 사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순간에 아버지를, 아들을, 남편을 잃어버린 피해자 가족들의 상념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어떠한 핑계로도 정당화 시킬 수 없다. 생명의 가치와 존엄은,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이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