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드 노이쉬타트, 루터의 아버지 한스와 어머니 마가리타 린데만(Margarethe Lindemann)은 동갑나이로 1479년경에 결혼하여 약 3년간 살았다.
오랫동안 루터는 아버지 한스 루터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다. 원래 변호사가 되도록 후원해 주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수도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스는 부요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냥 농사꾼으로 남기를 원치 않았고, 자신의 새로운 꿈을 위해 노력했다. 한스는 마틴 루터가 태어난 후에, 아이에게 큰 기대를 걸고 아이스레벤을 떠나서 맨스펠드로 이사를 갔다. 열심히 노력해서 자녀들을 잘 기르고 키우려던 당시 일반적인 부모들과 다르지 크게 않았다. 삭소니의 광산 사업을 하게 되는 성공적인 신분 상승을 이루게 된 것은 도시에서 존경을 받는 집안의 여자와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스는 자신의 장남에게 국가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법학 공부를 지원했던 것이다. 1501년에 마틴은 에르푸르트대학에 공부를 시작했다.

루터가 1483년 11월 10일 태어난 곳. 원래 있던 집은 1689년 아이스레벤 지역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817년 프러시아 왕 윌리엄 프레데릭 3세가 재단장을 한 것이다.

▲ 루터가 태어난 집에 대해서 설명한 표지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고 말았다. 아들 마틴 루터가 아버지의 꿈과는 정반대로 다른 길을 선택해 버렸다. 어느 날 마틴 루터가 들판을 건너서 친구와 함께 가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번개가 쳤다. 낙뢰가 떨어져서 큰 나무가 부러지면서 같이 걷던 친구가 죽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두려움에 휩싸인 루터는 곧 바로 성 안나에게 서원기도를 하게 되었다.
▲ 만스펠트, 루터의 아버지가 광산업을 하면서 정착한 작은 도시. 어린 시절 마틴 루터가 초등학교 과정을 이 지역에서 수학하면서 성장했다.

“성 안나여 나를 도우소서! 나를 살려주시면, 내 일생을 수도사로 바치겠나이다.”

▲ 1505년부터 1511년까지 수도사 루터가 살았던 에르푸르트의 어그스틴파 수도원.13세기에 세워진 수도원 건물들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성 안나는 마리아의 어머니이자, 광산을 보호하는 수호성자로서 독일에 알려져 있었다. 1505년 21세의 마틴 루터는 에르푸르트 어거스틴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이 수도원은 인문주의가 널리 확산되고 있던 시대에 유명한 철학자들의 글을 따라가기 보다는 서방 신학자 어거스틴의 신학을 자랑스럽게 중심으로 삼고 있었다. 결국 어거스틴의 핵심사상은 성경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기에, 성실한 수도사로서 훈련을 받은 루터는 성경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는 신학자가 되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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