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헌철 목사
「명상록」의 저자,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121년 4월 26일 - 180년 3월 17일)는 절대 권력과 부귀영화를 덧없는 것으로 질타하면서 현세적인 집착과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철저한 금욕과 명상으로 일관할 것을 가르쳤던 철학자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그의 치세는 전쟁과 억압이 사라진,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인류의 가장 문명화된 ‘로마의 평화’시대를 일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절대 권력과 부귀영화를 부질없는 것으로 강조했던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폭군 코모두스 제위를 물려주었을까요? 그 이전의 로마 황제들은 유능한 젊은이를 후계자로 결정하는 것이 관행이었음으로 자식에게 제위를 계승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식에 대한 애착이 강한 범부였을까? 자식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던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선택은 결국 인간도살장에서 수많은 생명을 학살하는 잔인함을 만끽했던 아들에 대한 애착뿐이었고 결국 그것으로 인해 ‘로마의 평화’시대가 막을 내리고, 로마의 운명 역시 몰락의 과정을 걷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다혹독한 박해자라는 기록도 있다. 그의 박해 당시에‘ 펠리시타스’는 일곱 아들을 둔 여인으로 당시 교회에 의해 특별히 구별된 과부였다고 전해진다. 이는 그녀가 교회를 섬기는 일에 얼마나 헌신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녀의 교회를 향한 열정은 이교도들의 눈에 거슬렸고 결국 이교도들의 사제에 의해 고발당하게 되었다. 그로인하여 총독은 각종 회유와 협박으로 그녀의 개종을 종용하였다. 이 때 그녀는 임신 중이었음으로 아기로 인하여 순교하지 못하면 어찌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체포 구금 된지 8일 만에 아이를 순산하게 됨으로 그 아이는 기독교 여신자 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고, 그녀의 핏덩이 아기를 향한 마음이 어떠했을까?

함에도 그녀는 타협내지는 개종보다도 순교의 길을 원하여 당당하게대답 하였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당신에게 승리할 것이며 나를 죽인다면 죽음을 통해 더욱 큰 승리를 거두리라"

이에 격분한 총독은 그녀의 일곱 아들을 회유하고 협박함으로 그녀의 마음을 돌이키려 하였으나 그녀의 아들들 역시 어머니의 신앙을 따라 조금도 굴복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영광스러운 순교의 길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패배요, 종말이라고 여기기에 죽음의 협박 앞에서는 배교하는 자들이 많으나, 죽음이 승리요, 새로운 시작이라고 확신하는 ‘펠리시타스’와 그의 일곱 아들들은 믿음으로 장렬한 순교의 길을 갔던 것이다.

작금에 연합기관들의 추태, 감리교단의 감독회장 선출 문제, 장로교총회 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사건들로 세인들의 지탄과 항의를 받으면서도, 도리어 불의의 행위를 행하는데 당당한 모습에서 비애를 갖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분명히 잘 못된 일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작은 부스러기라도 주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에 박수를 보내며 편승하는 자들이 있음에 더욱 불의는 왕성해 질 수 밖에 없으니, 과연 한국교회에서 순교를 기대하며, 바른길, 옳은 길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로인하여 이단들이 도리어 깨끗함을 주장하고 있음에 통분함이 있는가?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딛 1:15-16).

/한국장로교신 학장,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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