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모든 역사는 남성들의 행적 위주로 해서, 남성들에 의해서 기록됐다. 따라서 민족사와 기독교역사의 문제들은 남성들에 의해 대변되어 왔다. 그러므로 기독교 여성사와 민족사는 남성들이 대변한 역사적 행적과 대변을 위주로 해서 고찰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여성의 역사는 지금까지 남성중심의 역사에 포괄된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이 때문에 여성의 역사는 은폐되거나 망각되었다. 그리고 삭제되었다. 피억압민족, 눌린 자, 가난한 자, 이들의 인권과 자유가 박탈당한 역사가 세계의 죄악을 반증하듯, 여성에 대한 억압은 그 모든 억압과 자유박탈의 집약으로 나타나는 예증들을 대체로 역사기록에서 은폐되어 왔다.

여성억압의 역사는 곧 남성지배의 역사를 의미한다. 과거 세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적 정복과 지배, 전쟁과 약탈, 자본주의적 착취, 세계분단의 핵무기 개발, 약소민족들의 대리전쟁 등 근대 이래의 역사적 전개는 인간 지배체제의 배출이며, 업적이다. 여자들도 그러한 세계구조의 창출에 협조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세계구조의 억압자라는 것을 서양에서는 19세기 이래, 한국에서는 개화기 이래, 특히 1920년대에 각성하기 시작했고, 여성들이 사회로 전면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각성운동은 눌린 자, 가난한 자 층에서도 또 그 밑바닥에서 희생된다는 것을 관찰했다. 한 사회, 한 민족 안에서의 여성억압은 또한 세계지배구조의 문제이다. 피지배자는 남자들, 약소민족, 노동자, 농민이지만 그들 중에서도 여성은 대표적인 피지배자이다.

수명을 다한 조선 말, 서양과 일본 열강들에 직면해서 민족의 개화와 근대운동, 민족의 자주독립과 국제개혁운동이 벌어졌을 때, 여성교육의 필요성이 각성되고 역설되었다. 이것은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운동은 서양기독교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세계 열강들에 직면한 약소민족의 각성과 여성운동의 각성, 민족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다.

서양문명으로부터의 여성운동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민족의식을 매장해 버리게 된다. 기독교선교는 민족운동의 일환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교분리정책을 내세워 우리민족의 민족의식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그렇다고 개화파나, 독립협회 주도자들이 서양문명과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역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항일민족운동도 역교육과 여성의 민족운동 참여의 필요성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가 동일하게 각성했다. 여서우 자신들에 의해서 교육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이름 없이 여성들은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민족의 자유는 곧 여성의 자유이기도 하다는 것이 남녀 독립운동가들에게 의식되었다. 여성독립운동의 절정은 3.1만세운동이었다. 그래서 항일민족운동이 기록에 나타난 사람에게 고찰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위주의 세계를 기록한 역사서술은 역시 지배의식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여성의 민족사적 의의는 한마디로 이 억압민족의 고난 자체였다는 사실에 있다. 민족의 고난 밑바닥에 여성의 고난이 있어 왔다, 그것은 에집트의 종살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진자들, 가정에서 얼마나 고난을 당했는가. 하나님은 종살이하면서 당했던 여성들을 보호하기 간음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이혼하면 분명히 이혼증서를 써 주라고 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대제사장, 빌라도의 억압을 당하던 여성들과 아이들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가 저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 속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벌인 하나님나라운동, 민족의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민족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민족이 나갈 이정표를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