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찬 목사
진실하게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실하게 살기 위해 손해를 무릅쓰며 애쓰는 성도가 요사이 사업이 너무도 힘들었나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데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해불능의 시련과 역경을 주시는 이유를 한 성도가 찾아와 심각하고,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왜 불신앙인들과 동일하게 아니 어느 때는 더 혹독하게 시련으로 우리를 다루시는가. 무섭게, 혹독하게 아픔을 경험하고 목사에게 찾아와서 ‘세상을 살면서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확실하다면 뭔가는 조금 달라야 하지 않으냐’고 다그치는 성도에게 위로의 심정으로 손잡고 말씀으로 위로하였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련과 역경을 허락하신다. 시련을 당하고 있는 나는 그 이유와 목적을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시련으로, 역경으로 우리를 다루시고, 세우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해 시련으로, 역경으로 우리를 다루신다.

요셉은 십대 후반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미디안 상인들에게 종으로 팔렸다. 그리고 애굽의 귀족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안주인의 누명 씌움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도 보통 감옥이 아닌 한 번 들어가면 왕이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오늘날로 말하면 정치범을 가두는 감옥이었다. 요셉은 언제나 선한신앙정신과 태도로 성실함을 일관하지만 언제나 결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설득되지 않는 결과가 그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훗날 요셉이 재상이 된 후에 자신을 돈을 받고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을 만났을 때, 자신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고백하듯이 말하고 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45:5,8)

요셉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당시 고대 근동의 숱한 백성들을 살리시려고 요셉 자신에게 극심한 시련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을 성숙시키시려고 우리에게 시련과 역경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갖 시련과 역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며, 경건하고, 성숙한 인격자로 세워지게 된다고 교훈하신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고난 중에서 훈련하여 성숙함으로 이끄심에 대하여 잠언 17장 3절에서 말씀하신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자녀 된 우리들에게 시련과 역경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그릇된 길로 나가고 있을 때나, 불순종 할 때, 그릇된 삶에서나 길에서 벗어나도록 깨닫게 하시려고 시련의 채찍을 가하신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5-11절)

위의 말씀에서 무려 8번이나 나오는 징계란 말은 훈련 또는 훈육을 뜻한다. 영어 성경에는 Discipline로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들을 바른 길로 가게 하시려고, 시련을 통해 훈련시하시고 꾸지람과 채찍을 가하시어 우리들을 그릇된 길에서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그 시련의 채찍을 가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꾸짖고, 때로는 사랑의 매를 드는 것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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