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교회에 뿌리내린 군사문화, 사회적 연대 장애요인 제기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하여… 군사문화에 길들여진 한국교회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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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1  10: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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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조찬기도회 모습.

선교 130년 군사문화 영향 아래

한국교회가 청산해야 할 문화 중 하나가 군사문화이다. 기독교 130년 역사 중 30년은 군사정권 아래 있었다. 한국사회의 군사 문화적 전통을 따져보면 일본제국주의 36년도 준군사적 기반아래 있었으며, 해방 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도 군사문화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군사문화는 사회적, 교회적, 문화적, 정치적 등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때문에 군인들이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반민주적인 사고와 행동 양식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마르크스주의는 군사주의와 근대 자본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역동성의 관계를 규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기초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군사주의는 독재와 반민주, 사회적 계층화, 경제적 경쟁화, 실리적으로는 인간 상호간의 적대화, 종교적으로는 보수와 진보의 격돌 등 부정적인 요인들을 낳았다. 국제적으로는 다른 나라를 점령, 통치하는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의 기초를 형성해 주었다. 이것은 군사적 점령을 넘어 식량무기화, 연료 무기화, 경제적 침략 등의 문제를 야기 시켰다. 또한 기득권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군사정부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었으며, 교회 안은 보이지 않게 군사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이름만 거론하면 알 수 있는 국내의 교회지도자들은, 군사정권에 붙어 피 묻은 손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이들은 예수님이 벌인 역사의 현장에 없었다. 또 교회 역시,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다. 가진 자와 기득권자, 그리고 권력자와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군사문화에 묻혀 한국교회의 국민적 신뢰도를 끝없이 추락시켰다.

군사문화 성장 이데올로기에 적용

한국교회사에서 군사문화적 경향들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 교회성장 이데올로기의 도입과 더불어 대형교회들이 등장했던 시기로 봐야 한다.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서 근대화가 추진되면서,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국제 자본주의 영향권 안에 편입되어 갔다. 이 때부터 농촌의 노동인력이 급격히 도시로 유입됐다. 이들이 도시교회로 몰려들면서, 대형교회들이 형성됐다.

이런 대교회들은 전통적이고 목자적인 목회방식을 통해서는 넘쳐나는 교인들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수의 교인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조직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교회에 보다 많은 목회자가 필요했고, 폭넓은 조직망이 필요했다. 또한 효율적인 목회와 조직적인 교인 관리를 위하여 교회는 새로운 방법의 목회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 때 군사주의적 경영 방식, 즉 위계질서가 등장하게 된다. 그것은 오늘 대형교회 목회자가 어디를 방문하든, 아니면 행사장에 나타나면, 2열로 장로, 목사들이 도열하는 것만 보아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군사주의적 경영방식의 도입은 불가피하게 교회제도의 변화를 가져 왔을 뿐만 아니라, 담임목회자 혹은 당회장을 사령탑으로 하고 부목사나, 전도사 등 하위직의 목회자들을 기초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를 만들었다. 하위 성직자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위계질서는 더욱 세분화되었고, 이들 사이의 상하관계는 더욱 엄격해졌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는 기업체 총수인 회장에 비교되며, 그리고 당회장으로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 이 관계들은 평등주의적 초대교회가 가졌던 성직자들 사이의 관계와 같은 직무상의 차이가 아니다. 계층 간의 차이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제도는 독일이나, 미국 등 오랜 교회의 전통을 가진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발상지인 독일교회는 한국교회의 피라미드식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3명의 목회자가 있는 교회는 수평관계로서 자기들에게 주어진 직무를 각각 수행한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번갈아 하며, 구역을 나누어 교인들을 보살핀다.

   
▲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가조찬기도회 광경.
분명한 한국교회의 위계질서

한국교회의 위계질서는 장로와 집사, 일반 평신도 사이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이들의 역할과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로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기관이기 때문에 교회적 지위는 대단히 높다.

당회원이 된다는 것은 마치 군에서 장성에 진급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장로가 되기 위해서 경쟁을 벌인다. 장로가 안되었다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위계적 사고가 지배함으로써 자신들의 봉사의 직분을 망각하고, 권세를 부리면서 비기독교적 발상과 행동을 하게 된다. 집사는 제직회의 회원이 될 뿐이지만, 교회 안에서 장로직을 향해 가는 하나의 중요한 계층상승의 과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평신도는 고작해야 1-2번 열리는 공동의회나, 제직회에 참석해, 교회 내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른다. 참여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한국교회에서는 교회의 중요기관인 당회나, 제직회, 그리고 노회나, 총회의 장을 목사가 맡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총회나, 노회의 대의원도 목사와 장로만 회원권이 주어진다. 모든 중요한 자리가 목회자들에 의해서 독점되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삼권분립에 의한 의회주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교회 안에서 성직자의 월권행위가 등장하고, 때로는 재정비리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교회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다툼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그래서 적절한 견제와 감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목회자는 목회에 전념하고, 평신도 대표들은 치리와 관리를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군사문화의 요소는 교인들의 대부분의 교회가 설치, 이요하고 있는 구역제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구역 설치의 원래 목적은 일요일과 수요일, 수요일과 토요일 사이의 공백을 메우고, 각 지역에 이웃해서 살고 있는 신도들 사이의 친교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 인구가 많아지고, 교인이 늘면서 구역은 교인들을 관리하는 수단이 되었다. 여기에서 구역장은 소단위의 교인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지게 됨으로써 그 지위가 격상되었다. 대형교회들 경우에 구역을 부목사가 맡아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구역장은 일종의 중대장이나, 소대장의 역할을 한다.

고지탈환식 선교방식 근절해야

군사 문화적사고의 형태는 제도에서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에서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의 성장이데올로기와 더불어 교회의 선교내지는 전도프로그램이 승리주의에 기초하여 군사 문화적으로 조직되고 실천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지탈환식 선교방식이다. 이것은 얼마 전까지 부흥회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예수초청잔치라는 새로운 방식이 이용되고 있다.

이 방식들은 대체로 군사문화의 총력전도, 총동원주일,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밑바닥에는 승리주의가 기초를 이룬다. 한마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종교의 신도나, 이웃교회의 교인을 자기교회로 끌어오는 것이다. 여기에 성공하여 대교회를 이룬 목회자는 성공한 목회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 대형교회로 성ㄹ장하는 교회들을 보라. 이들 교회가 새신자를 전도해서 성장한 교회가 아니다. 이웃교회의 교인을 빼앗아 큰 교회를 만들 것이다. 오늘 교회인간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한마디로 교인쟁탈전이다. 그렇다보니 교회 간에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으며, 심한 경우 법정다툼도 벌인다.

이러한 전투적인 적대감은 비단 타종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카톨릭 교회에 대해서도 가해지고 있다. 이것은 같은 개신교 내에서도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300여개로 갈라진 장로교단은 더욱 심각하다.
그렇다 한국교회는 100개중 99개는 같고, 하나만 틀려도 적으로 간주한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이러한 미성숙한 판단방식, 즉 흑백논리는 아군과 적군을 철두철미하게 구별하라고 강요하는 군사문화적 영향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문화적인 경향은 교회가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총력전도, 총동원주일, 선교의 전선으로, 선교고지 탈환, 십자군 군병들아, 우리 선교기수를 해외로, 영적전쟁 등은 그동안 교회가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라, 모르는 사이 군사문화에 감염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용어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강한 것, 힘센 것은 좋은 것이며, 약한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배문화, 아니 남성문화 좋은 것이며, 거기에 하나님나라의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약함에서 완전해 진다

그렇다 보니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강한교회, 큰교회, 돈이 많은 교회, 세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 부자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한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니라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지재하고 있는 사고는 십자군적 사고방식이다. 고 손규태 박사는 신학자 폴 틸릭의 말을 인용, 십자가와 십자군은 그 어원은 같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가장 먼 거리에 있다고 했다.

인류를 구하기 성육신하고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 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가 주는 사건이라면, 군사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십자군운동은 그리스도의 정신과는 상반된다. 그리스도의 사건, 즉 성육신의 사건과 그의 수난의 길,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이 우리에게 구원이 되는 것은 그의 강함이 아니라, 약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주임을 당하심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완선하셨다. 그의 능력은 강한데서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데서 완전해진다는 것이다. 본회퍼는 “하나님은 약함에서 우리를 돕는다”고 지적했다. 예수님은 약함을 통해 승리하셨다. 또한 사랑을 실천하고, 화해자로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한국교회는 특히 대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군사문화는 위계적 계층화와 함께 승리주의 적대감, 흑백논리, 그리고 전투적인 언어 사용으로 특정지울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지녔던 평등주의를 몰아내고, 위계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체계를 강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교회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코이노니아는 사라지고, 익명성과 자본주의적 기업적 관리체계가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승리주의의 적대감, 그리고 흑백논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수단의 목적을 정당화 한다는 교회성장론의 뿌리가 되었다. 이는 곧 타종교, 타교단, 타교회를 적대시하거나 아니면 이들과의 진정한 교제를 차단한 왜곡된 개별 교회주의가 탄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개별교회주의는 오늘날 결정적으로 요청되는 사회적 연대에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등장, 종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통합 기능에 대해서 오히려 역기능을 한다. 이로 인해 교회는 사회적 공공성을 상실했고,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부자들을 위한 교회로 변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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