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강 목사
지금까지 교회는 주일을 성수하라고 가르쳐 왔고, 그것도 꼭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의식화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교회에 출석한 교인들은 대부분 본 교회에 출석을 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으로 생각했다. 교회의 생성은 성도들의 빠짐없이 예배를 드리려 모여야 머리되신 예수님과 몸 된 교회가 하나가 된다.

주일 성수는 구약 안식일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행동에 근거를 둔다. 자신이 지방이나 다른 도시에 거주할 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여 유월절을 지켰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는 이유는 유월절 제사를 드리며 함께 고기와 무교병을 나누기 위함이다.

현대 교회의 주일 성수는 예배당에서 예배 순서에 의해 약 한 시간 정도의 예배시간을 다양한 순서에 의해 진행 한다. 예배의 중심은 예배드리는 절반의 시간을 목회자의 설교가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오늘의 예배에는 제사가 없으며, 목회자의 설교는 죄인 대신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대한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 성만찬이 대다수 교회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설교는 빗나간 화살이 아닐까?

그리고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급히 귀가하는 성도들이 주일 하루를 쉬면서 안식한다면 별 문제 없지만, 주일 한 시간 예배드린 이후 세상의 생활 속에서 신앙과 무관한 생활을 누린다면 이는 성도의 불 경건이며 주일 의미가 퇴색되어 주일이 온전히 지켜지지 않음이다.

진단해야 할 것은 예배를 집례 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신앙의 행태이다. 목회자는 설교를 하기 위한 한주간의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성도들은 한 주간의 세상 생활 속에서 어떤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 왔느냐이다. 구약의 선지자나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할 때에 그들의 세상 생활은 중세 수도사들의 생활 속에서 엿볼 수 있듯이 거룩하고 경건하다. 마음과 몸과 정신을 깨끗이 함은 물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그들의 진지함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 신뢰한 자세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선지자나 예언자를 선택할 때에 개개인의 자질과 성품은 물론 평소의 생활을 면밀히 검토하여 선택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교회를 이룬 성도들의 영혼 속에 신앙과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현대교회는 주일을 예배순서 속에 가두어 예배 순서만 끝나면 주일을 성수한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주일 성수는 인도자나 예배드리는 성도들이나 모두 산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현재 주일에 드리는 대부분의 예배가 제사의 성격이 아니라 성경 사경회로 끝이나니 문제는 목회자들의 예배 인도에 대한 성경적 의식이다.

예배를 드리는 자는 자신의 죄를 사함 받기위해 하나님께 자신을 제물로 드려야 한다. 제물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죄 없는 짐승을 속죄 물로 드리는 제물을 제단에서 각을 뜨고, 피를 단 사면에 뿌리고, 내장을 제단위에 태운다. 본래 사람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사를 직접드릴 수 없고 제물이 될 수 없다. 기독교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 제물이 되셨기에 죄인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대신하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므로 제물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예배는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제물로 드릴 때만이 산제사가 된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나 예언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중세의 수도승처럼 믿음과 신앙의 열정이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하며, 영적으로는 경건해지도록 구도자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 다음 교회를 이룬 성도에게는 주일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으로 주일 성수 땜질이 되게 하지 말고, 진실로 예배를 드린 이후 가정과 사회에서의 성별된 경건한 생활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주일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시간을 성도들의 형편에 따라 신축성 있게 운영할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가 드렸던 예배 모습을 회복함이 곧 예배와 신앙의 회복임을 알아야 하는데, 문제는 초대교회의 예배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을 목회자들이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예배의 중심이 설교에서 비켜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데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 교회의 예배는 틀에 갇힌 순서 진행에 불과 하며, 설교중심의 예배는 예배의 질을 떨어뜨리며, 신성을 약화시키는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기독교의 회복은 바로 주일예배가 산제사로 회복할 때에 가능하다. 그런데 목회자들의 의식이 따라 줄지 의문이다.
/필운그리스도의 교회·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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