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출애굽한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멀고도 험한 시나이 반도를 지나 가나안 턱밑인 가데스에 도착했을 때이다. 이들 앞에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두 개의 길이 있었다. 에돔을 통과하는 잘 닦여진 가까운 길과, 모압의 험한 사막지대를 돌아서 가야 하는 먼 길이다.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가깝고 잘 닦여진 길을 통과하고 싶었다. 모세는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 “청컨대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민 20:17) 라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에돔 왕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모세는 결코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며 다시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래도 에돔 왕의 태도는 거칠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모세는 백성들을 이끌고 험한 길을 돌아서 가나안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들이 들어선 길이 얼마나 험했든지 백성들은 ‘이 거친 사막에서 우리를 다 죽일 것이냐’고 모세를 원망했다. 마실 물도 없지, 먹을 것은 거칠지, 불뱀에 물려 죽는 일까지 빈번하자 백성들은 거의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장면에서 신명기(2:4-5)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입성 길에서 에돔과 다투지 말고, 모압과도 다투지 말고, 암몬과도 다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들의 땅은 옛적에 이삭에게 준 땅이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준 땅이라는 이유였다. 이스라엘과 조상이 같은 형제 나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형제 나라들과 전쟁을 통해서 열 수 있는 쉽고 빠른 길을 피하는 대신, 험하기 이를 데 없음에도 ‘평화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고통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출애굽 여정은 예수께서 성취하실 구원의 예표이기도 하다.

인류 구원의 예표가 전쟁이 아닌 ‘평화의 길’을 가게 했다는 것은 오늘의 안보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과 한국교회가 깊이 통찰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후대의 이스라엘은 먼 길을 돌아서 가기보다 항상 빠른 길을 더 선호했다. 번영에 대한 조급함과 권력의 야욕으로 전쟁과 억압을 일삼은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가 고통으로 점철된 것은 평화의 길을 거부하고, 쉽고 빠른 길만을 걸었던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2013. 4. 21)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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