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1년에 수천만명의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아이들의 인권유린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한참 학교에 다닐 나이인데도, 한 끼를 연명하기 위해 작업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야기된 전쟁은 아직 채 꽃도 피어보지 못한 어린 새싹들의 영혼과 육신까지도 잔인하게 짓밟고 있다. 마치 아동에게는 처음부터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각종 폭력, 노동착취, 성폭력 등 악한 손길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게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어른들의 세상으로부터 작고 연약한 우리 미래가 죽임을 당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는 분명 천국은 아이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수의 향기를 전혀 풍기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전쟁이 없는 세상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세상,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세상, 부모와 함께 건강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흐르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아무것도 원치 않고, 오직 가족과 함께하겠다는 그들의 작은 바람조차 묵살해 버리는 것이 오늘 세계이다.

어린이는 인격적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다. 차별받지 않고, 균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또한 건강하게 성장해야 하며,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한다. 덧붙여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충분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즐겁고 유익한 문화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아동의 권리다. 그러나 이들의 권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온통 이기심으로 가득찬 어른들로 인해 자신들의 권리는커녕, 생명조차 담보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곳곳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접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멀리 IS가 창궐한 시리아 등지에서의 아이들의 인권은 더욱 처참하다. IS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들의 입장과 반하는 사람들을 무참히 살육하고 있으며, 전쟁에 이용되고 있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부모를 잃고 생면부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여겨 폭력을 일삼고 있다는데 문제다. 더욱이 IS를 막고자 서방 국가에서 자행한 폭격으로 인해 도리어 아이들까지 죽임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누구를 위한 평화인지 알 수 없다. 이들은 팍스를 원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말한 샬롬을 원한다.

뿐만 아니라 시리아 내전 속에서 아이들이 당한 고통은 더할 나위 없는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전기고문, 손톱 뽑기, 매질 등 온갖 고문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인간방패 노릇도 한다. 지옥과도 같은 곳을 탈출해 망망대해를 건너던 중 배가 전복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그대로 수장되고 있다. 이들 중 아이들의 숫자도 상상을 초월한다. 시리아 내전으로 삶을 갈망하다가 유럽으로 이주하던 중 지중해에서 배가 난파되어 터키 보드룸의 해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쿠르디 아일란 사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시커먼 바다는 그들에게 ‘희망’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안겨주며 오늘도 그들을 바다 속 깊숙이 끌어들이고 있다.

필리핀 쓰레기 마을에서의 아이들 인권도 바닥을 치고 있다. 주민들 대부분이 쓰레기 더미를 뒤져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이들도 부모를 도와 온종일 쓰레기를 뒤지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빛나는데 이곳은 온갖 쓰레기로 산을 이루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처한 환경이 어떤 것인지도, 자신의 몸이 병에 든 것도 모른 채, 그저 쓰레기를 한 겹 한 겹 뒤지기에 전심을 다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인권이 짓밟히고 있는데도 어른들은 평화를 내세운 전쟁 놀음에 몰두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평화가 오지 않는 한, 세계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세계평화는 아이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 주지 않는 한 기대할 수 없다. 해방의 계절 8월, 희망의 계절 8월, 광복의 계절 8월의 문턱에서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닐까.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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