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관행을 혁파하는 루터의 고뇌에 찬 행동들을 몇 가지 예로 들어서 설명했다. 집요한 로마 교황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은 결코 굴복하지 않고,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지속하였다. 루터는 외부에서 밀려들어오는 비난과 가정 내부에서 겪는 아픔도 이겨내야 했다. 1542년 큰 딸 막달레나의 죽음으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 후로 자신의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 어떠할까? 무감각하게 반복하는 관행들이 없는가?

총회와 교단들을 통해서 집행되는 각종 조직들과 기금들을 철저히 반성해야만 한다. 한국교회의 세속화된 타락상이 자주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비리와 윤리적 부도덕함이 지속적으로 고발되고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있는 일부 지도자들은 과연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회개하지지 않는다면, 어찌될까 두렵기만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심전력하여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딤전 4:5)고 강조하였다. 성숙한 지도자의 모습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아는 것”(딤전 6:8)이다. 돈을 사랑하지 않고, 높은데 마음을 두지 않으며,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는 일군이 되어서 명령을 준수하는 것이다(딤전 6:14). 성도들이 마음에 불편하게 생각하는 목회자의 일탈 행동들이나, 교회 재정의 잘못된 집행 등이 가능하게 된 것은 왜곡된 관례에서 빚어진 일들이라고 할 것이다.

제3장 종교개혁의 성공 요인들

루터는 개신교회의 영웅도 아니었고, 로마 가톨릭교회를 망쳐놓은 악한 원흉도 아니었다. 그에게도 한 인간으로서의 장점과 단점이 있었고, 어느 사람에게나 있는 것처럼 공로와 허물이 똑같이 있었다. 물론 루터는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무너지지 않는 견고함을 갖고 있었다. 거듭해서 강조하지만, 또 하나 기억해야할 것은 루터가 홀로 떨어져서 개혁을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대한 사상과 신앙의 변화를 이룩한 종교개혁은 그의 친구들, 다른 도시의 목회자들, 대학동료들, 정치가들이 함께 협조하여 성취한 것이다. 또한 중세말기 역사의 진행과정 속에서 흘러나온 것들과 종교개혁의 내면적인 성찰이 서로 깊숙이 연계되어 있다.
로마가톨릭의 기득권 세력들, 급진적 재세례파와 과격한 혁명주의자들, 온건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 루터파, 스위스 북부의 츠빙글리와 그의 추종자들, 프랑스 인접지역에 있던 제네바와 영국의 종교개혁자 등등, 역사의 변화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결합되어 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도, 마치 처음에는 이 땅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러 보였다. 그러나 겉으로는 세계를 재패하던 로마의 권세 아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고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룩하시고, 부활의 능력을 드러내신 후에, 제자들은 더욱 더 확신에 가득차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미 죽어버린 유대교를 건져내신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되었고, 마침내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 제국이 무너지게 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세상의 변화와 흐름이 어떻게 이루어졌던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현재 한국의 역사적 상황 변화가 매우 혼란스럽고 세속화된 불순물들이 많이 들어있다고 판단한다면, 종교개혁은 어떤 시대를 거쳐서 변화로 이어졌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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