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한달전만해도 온 나라가 가뭄으로 난리였다. 말라가는 저수시에 갈라터진 논, 대책없이 발생하는 거대한 산불, 식수부족으로 인한 제한 급수 등등... 온통 물부족으로 인한 국가적 재난은 나름 자부심이 있던 치산치수(治山治水)에 대해서조차 회의감이 들게 만들었었다. 그러던 나라가 한달 뒤 지금은 온통 물 때문에 더 큰 난리다. 집중호우지역의 비피해가 워낙 심각하여 재난구역 선포에 이르고, 수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과 전 국민의 구호의 손길이 줄을 잇고 있다. 그 극심한 시기에 잠간이라도 내리는 비를 ‘단비’라고 반기며 조금 더, 조금 더 하던 때를 지나 이제 물만 보면 치를 떠는 때가 되었으니 아무리 세상사 인심이라 해도 가소롭기가 짝이 없고 가볍기가 한이 없다.

혹자는 인간은 자연을 이기지 못하니 자연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라고 가르친다. 나아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의 질서와 법칙에 편승하여 공생공존하자고 덕담을 건넨다. 그것이 맞다면 가뭄이든 폭우든 순응하고 받아들일 일이지 왜 같은 비를 ‘단비’라고 치켜 세우다고 같은 비를 ‘수마’라고 모욕하는가? 단비가 모여 폭우가 되고 폭우가 모여 수마가 되었다. 이는 선도 악도 아니요 그냥 자연의 현상일 뿐이다. 그냥 인간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일 뿐이요, 매년 반복될 것이니 대책을 세우고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당연지사일 것이다.

자연이 위대하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 그 법칙을 존중하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신 삶의 터전이요, 명백한 창조질서를 따라 인간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종속의 관계이다. 감히 그 자연이 인간을 지배하거나 해하는 일은 창조의 윤리에서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인간의 타락 이후에 자연이 허무한데 굴복하면서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연의 탄식이 있지만,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난 사람들에게서 자연은 구속의 대상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이요,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의 후손들이 누리며 향유할 삶의 터전일 뿐이다. 그 자연이 결코 인간 앞에서 위대할 수 없다.

결국 단비에서 수마를 경험해야 하는 인간의 시선은 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향하여야 한다. 단비의 달콤함도 수마의 상처도 모두 그 분의 손에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혼란한 사회에서, 불평등이 당연시 되고 있는 구조적 모순에서, 적개심과 분노 가득한 삶의 현장에서 단비와 수마는 공존한다. 인간이 스스로 불행과 행복의 한계를 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향유하고자 하여도 그 역시 그 분의 손 안에 있다. 인간은 결코 단비와 수마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고 늘 언제나 그 사이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갈 뿐이다.

단비라고 칭찬받을 것이 못되며, 수마라고 욕할 것이 못된다. 역설이지만 그 단비 때문에 울어야 할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수마 때문에 즐거움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단비와 수마의정의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니 그 주관성을 탁월하게 뛰어넘는 실존으로서의 창조주, 그 분앞에서 겸손하지 못한 것은 오만한 인간의 이성의 저항일 뿐이다. 그 앞에서 겸손하라. 그냥 단순히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국정과제가 발표되었다. 이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시사평론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객관적 가능성보다는 주관적 단비와 수마가 혼재되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핵심은 그 책임자들의 겸손함이다. 100대과제 중에서 5년 안에서 성과를 볼 것은 별로 없고 오랜 세월 뒤에야 판가름날 것이 더 많다. 정부의 겸손을 구하는 것은 그 과제들 중에 우리하나님의 개입이 없이 성사될 것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모두가 그의 손에 있고, 인간이 할 일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히 행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단비와 수마를 위해 손을 들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주권자이신 그 분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머리를 조아려 우리의 위정자들이 그 분 앞에서 겸손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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