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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십자가는 가장 적대적•고통스러운 분단의 자리에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민족동질성 회복의 중심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상)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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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3  0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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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경쟁, 한민족 파멸의 길로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교회도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십자가도 교회의 지붕이 아니라, 가장 적대적이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은 민족의 염원이며, 소원인 분단을 극복해야 할 현장이 아닌가.

특히 올해는 민족해방 72년, 분단 72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69년, 6.25 한국전쟁 67년이 되는 해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3.1만세운동 100주년, 2년을 남겨놓고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7년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이다. 분단의 현장에 교회가 없는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말할 수 있는가. 8천만 민족을 위한 기도성회가 필요한가.

한민족의 해방과 광복은 미완성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한마디로 긴장상태이다. 북한은 핵무기개발과 연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를 긴장시키고 있으며, 중국은 남한의 사드배치와 관련, 무역보복에 들어갔다. 또한 러시아를 비롯한 일본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국은 연일 북한선제공격을 말한다.

오늘 한반도의 문제는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도, 주변국들에 의해서 ‘북 치고 장구 친다’는데 문제가 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의 문제가 거의 강대국들의 이익에 따라 논의되고, 해결되어 왔다는데 문제가 있다. 남북한 문제를 논의하는데 있어 당사자인 남한이 빠져 있었다는데 국민 모두는 자각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이나, 민족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반면,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민족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뜻있는 목회자와 평신도, 그리고 신학자들은 민족분단의 한복판에 있었던 기독교가 이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분단극복과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박순경 박사는 자신의 저서 <민족통일과 기독교>(한길사)에서 “세계분단의 중심에 세계교회가 있었다. 세계교회는 세계분단 극복을 위해서 말하고, 행동했다”면서, “한국교회도 민족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이제는 교회가 한민족의 염원인 민족통일과 분단극복에 대해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남북한의 긴장을 완화하고, 민족통일을 위해서 제3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3의 길는 민족분단을 넘어서서, 남한의 불평등한 사회와 경제체제, 북한의 경직된 권력구조를 넘어서서, 남북의 군비경쟁을 넘어서서, 평등한 민족사회와 경제체제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제3의 길의 주역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이 아니라, 한민족이어야 한다. 이 존재에 의하여 새로운 미래로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구원사건의 표징이다. 일제탄압 아래서의 수난, 민족분단 상황에서의 온갖 조작과 수난은, 세계 죄악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아는가. 기독교는 ‘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켜 세계민족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는가. 또 많은 사람이 무고하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수난은 그 죄악을 증거하는데, 또 이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를 표징한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서 보여주신 새로운 미래는 반드시 도래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다. 죄악과 억압, 전쟁과 희생이 반복되는 한 새로운 미래는 묘연하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칫하면 허무주의에 귀착하고 말 수도 있다. 인간성이 성취될 궁극적인 새로운 미래가 도래해야 한다는 것은, 미래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혹은 미래로부터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희망의 종교라고 말한다.

   
 

분단을 넘어서는 제3의 길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분단극복에 대해서만큼은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내려놓을 수 없다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는 예배시간마다, 아니 각종모임에서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기도하며, 민족통일의 전위대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이후 북한선교정책도 수립했다.

각종모임에서 드리는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는, 행동하지 않는 한국교회의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평화적인 민족통일, 남북한민족의 하나 됨이 그 만큼 절실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와 교단이 세운 북한선교정책은 통일 이후, 북한에 남한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이식시키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기독교인들의 시각이다.

즉 남북통일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교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은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를 상실한 결과이다. 이것은 국민 또는 교회 대부분의 소리라는데 이의가 없다. 통일의 문제는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단체인 교회가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는 그리스도의 구원과 미래의 희망을 스스로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가 통일문제에 관여하면, ‘국론분열’의 위협이 있다는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나라운동과 거리가 멀다.

교회는 “예수를 믿게 하고, 천당에 가게하면 된다”는 시각은 선교사들이 피압박 민족에게 전해준 잘못된 복음이다. 오늘 ‘북한선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교회는, 제 힘으로 통일하자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통일 이후, 그곳에 상륙하여 교회를 세우자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한마디로 헛소리에 불과하며, 새로운 미래를 갈망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민족사에서 떨어져 자기 게토에 감금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역사와 유리된 채 교회의 게토화에 모든 힘을 기울여 왔다. 통일문제는 교회가 아닌 누군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통일 후 그곳에 가서 많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분단 72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이 같은 사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기독교가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였기 때문에 기독교 배후에 있었던 또 현재 있는 서양의 제국주의, 식민주의, 신식민주의,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이데올로기 등의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를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분단국가 민족의 통일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기독교는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민족해방의 노선 분별하지 못했다. 특히 1945년 이래 민족분단상황을 고착화시키는데 정신적인 지주가 됐다.민족통일과 새로운 세계의 미래에의 궤도에서 이탈했다. 그래서 오늘도 한국교회는 무조건 북한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거부하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교회는 북한 김정은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무력도발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것이 아니다. 이념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무조건 북한이 싫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가 한사람을 위해서 희생을 당하는 북한동포를 생각하고, 이들이 김정은의 철통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북한동포를 도와주자는 말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다.

분단극복, 새로운 미래의 징조

한국교회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독일 통일의 중심에 독일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제도상으로 어떤 종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한국교회의 통일선교정책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북한이 명목상의 종교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들 종교는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지 않다. 이것은 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독일은 분단된 상황에서도, 동독과 서독의 교회는 하나의 교회로 유지되었다. 동서독의 교회는 분단을 강요당하면서도 일치감이 강했다. 때문에 동독과 서독 정부는 교회의 교류를 막을 수 없었다. 두 정권이지만 하나의 교회로 머무를 수 있었다. 서독은 교회기구를 통해 계속 동독 국민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지원했다. 분단이후에도 베를린을 통하여 수많은 동독의 국민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유입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서독정부는 교회기구를 통하여 동독에 감금되어 있는 많은 정치범들을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하면서, 구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완전히 밀폐된 상태에서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1천만 이산가족이,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를 못하는 비극 속에서 울고 있다.

무엇보다도 6.25전쟁이 준 상처는 씻을 수 없다. 한민족은 해방의 감격을 단일민족으로서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자기주체를 재확인할 새도 없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문제는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느냐는 것이다. 북한철수를 해방군의 자랑으로 내세운 소련은 탱크 등 막대한 무기를 제공하는 등의 사정을 미루어 볼 때 한반도에서의 동족상잔의 비극은…<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안병무 저, 1986년 12월, 한길사 참조)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한민족은 서로 다른 민족에게서 볼 수 없는 적대관계 속에서 72년을 살아왔다. 그 결과 모든 것이 기형화되었다. 정치를 비롯한 종교, 교육에 이르기까지 분단 상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북한 정권은 한사람을 위하여 전 인민이 희생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1인의 정권유지를 위해 핵무기 개발도 마다하지를 않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 남한의 보수적인 인사들도 남한의 핵보유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며, 교회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도 간간히 들려오는 한반도의 비핵화의 목소리는 기쁜 소식이다. 여기에다 자유이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이하 화통위)의 남북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노력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영국, 독일, 스위스, 일본, 중국, 홍콩 등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무기경쟁에 돌입한 남북한의 상황에서 보기 좋은 모습이다. 이것은 모처럼 한국교회가 국제사회에 남북한의 정전과 분단체제의 실상을 알리고, 경색된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향한 여정을 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국제캠페인이 얼마만큼의 실효를 얻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화통위는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을 움직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화통위의 뜻에 같이하는 일부 교단의 목회자와 평신도는, 남북한 통일의 문제를 국민부터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며, 민에 위한 평화적인 통일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과거 교회협을 비롯한 기독교계의 통일을 위한 회의가 숨어서 진행되어 왔던 것에 비하면,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한민족의 구원사적인 새로운 미래를 향한 몸부림으로 평가된다.

그렇다 교회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민족의 아우성을 듣고,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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