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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목사] 예배당이 성전인가
황인찬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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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9  14: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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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인 찬 목사

보편적으로 교회와 예배 당, 그리고 성전(聖殿)에 대한 구분력이 우리 한국교회에 없지 않으련만 애써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과연 예배를 드리는 교회라는 이름의 건축물이 교회이고, 성전인가?

건물이 성전인 시대는 시대적으로 구약시대이다. 솔로몬 성전이 그렇고, 스룹바벨 성전이 그러하며, 헤롯 성전이 그렇다.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사역을 통하여 더 이상 성전은 그 건물(들)이 아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인격적 현장으로서 성령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의 백성들이고, 그 심령들이며, 그들의 공동체이다.(고전3:16-17, 6:19-20)

건축물이 성전일 수가 없다. 그리고 성경은 성전이라고 결단코 말씀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성령님을 모신 사람 그리고 그 공동체가 바로 성전이다.

교회도 건축물이지 않다. 교회는 신구약 공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한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곧 교회다. 따라서 교회 중심은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이시고, 그 지체된 신자요, 신자들의 공동체가 교회다.

과격하게 들릴지라도 단연코 성전문화를 수용하면 기독교가 아니다. 예루살렘성전이나 이방종교 문화가 유입된 천주교의 성전문화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완성한 십자가의 역사를 무효로 만드는 두려운 것으로 성경적이지 않다.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시고, 함께 동거하기 위해 십자가의 대속역사를 이루신 것으로 이미 다 이루신(요 19:30)것을 하나님과 별거하게 만든 것이 성전문화이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끼어들어온 이방의 신전문화를 수용하여 이방종교화 시키고, 인간이 가로막고 있는 신적 권위의 제사장 문화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방의 신전문화가 진정한 교회를 거리로 쫓아내고는 교회인양 예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악마는 로마를 내어주고, 교회를 통째로 삼켰다”고 한 전도자의 탄식이 함성 같은 울림으로 들어야 할 때가 오늘이다.

교회와 성전, 성전과 예배당은 엄격히 다르다. 성전화(聖殿化)된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이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것은 엄청난 독설이며, 착각이다. 예배당이 성전으로써 하나님을 모신 전이라는 무섭고도 두려운 착각에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깨려하지 않는다.

단언컨대 어느 특정한 건축물을 하나님의 집 혹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라는 사상을 신자들이 갖게 하는 것은 교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엄청난 죄악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배당의 말씀전하는 강단을 신성시하여 그곳을 특별히 꾸며 장식하고, 엄격하게 구별하는 것은 진정한 교회를 망가뜨리는 행위가 된다.

예배당과 교회를 마구 뒤섞어 하나님의 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가르침과 주장 또는 생각은 거듭 말하나 두려울 만큼 매우 위험하다. 예배당을 성전화 시키면 예배당은 신당 또는 신전(神殿)이 되고, 그 곳에서의 예배(?)는 이방 또는 우상숭배의 제의가 되므로 결단코 기독교일 수는 없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 17:24~25)

성전의 본질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 이 영광은 더 이상 유형적인 건축물 안에 갇혀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상을 향해 숨김없이 계시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주의 몸 된 교회 안에 성령을 통해 거하시고 들어내신다.
학개 2:9은 성전의 변화와 확대를 잘 표현한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요한계시록 11:1-2에서 교회인 성전은 참된 성전인 그리스도를 모델로 그려진다.

그리스도처럼 교회도 고통당하고, 절망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교회들과 함께 머물 것이요, 영원한 죽음으로 이끄는 온갖 죄악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줄 것이고, 하나님의 항구적인 임재는 교회들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증할 것이다.

과거 성전의 지성소는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우주의 비가시적인 하늘 차원을 표상했으며, 바깥뜰은 가시적인 세상(땅, 바다, 인간의 거주지)을 상징했다. 이전에 성전 실재의 본질이던 지성소에 한정되었던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는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인해 마침내 새 땅과 새 하늘 전체를 포괄하게 된다. 마지막 때가 되면 참된 성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피조 세계를 가득 채울 것이다.(계 21:1-3, 10, 22)

언약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되, 그 교회를 하나님의 영화로운 임재로 가득 채우고, 하나님이 그 목표를 완전히 성취하실 때까지 세상을 그 임재로 가득 채우실 것을 믿는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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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주
교회, 성전, 예배당은 동의성을 가진 말로서 건물을 필수적으로 요한다. 이는 목회자 국어학 박사인 변이주의 학위논문이 명쾌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말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분별없이 의견을 발표하는데 이는 반성을 요한다. 한국교회가 우리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은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2017-08-15 07: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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