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어째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사람들은 유럽을 식민지로 만들지 못했을까?’ 라고 의문을 제기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다시 ‘기술 선진국 중국이 왜 기술 후진국 유럽에 추월당했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을 지배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해서가 아닌 환경 즉 일찍이 작물화가 어려웠던 토종 동·식물의 부족 때문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기술 선진국 중국이 기술 후진국 유럽에 추월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 중국은 일찍이 유럽에 앞선 주철,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 등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거기다 정치적인 힘, 선박제조 기술, 항해술, 제해권 역시 유럽을 압도했다. 15세기 초 크기가 무려 120m에 달하는 배를 선두로 보물선 선단을 파송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선단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향하지 못했다. 당시 중국 조정은 선단파견을 지지하는 환관파와 이를 저지하려는 관료파로 나뉘어 권력투쟁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관료파가 환관파를 제압함으로써 정치적 통일을 이루게 되는데, 동시에 선단파견은 중단되고, 활기 넘치던 조선소는 폐허로 변했다. 중국은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줄곧 정치적 통일로 인해 한 번 결정된 정책을 다시 되돌리지 못했다.

반대로 유럽은 계속해서 분열되어 있었다. 예컨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이태리 출신으로 태어났지만, 프랑스의 앙주 공의 신하가 되었고, 다시 포르투갈 왕의 신하가 되었다. 그러나 포르투갈 왕에게 서진 탐험을 위한 배를 달라고 호소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메디나 세도니아 공에게 호소했지만 그 역시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스페인 국왕과 왕비에게 호소하자 처음엔 거절했으나 마침내 허락해 주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말이다. “그 당시 만약 유럽이 통일되어 앞의 세 왕 중 한 명이 다스리고 있었다면 남북 아메리카의 식민지화는 무산되었을지도 모른다.” 정치적 분열이 결과적으로 탐험을 가속화시키고, 반대로 정치적 통합이 탐험을 가로막은 것인데, 그렇다면 지난 70년 동안 남과 북의 분단은 어떤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북한의 일당 독재에 의한 정치적 통합보다 혼란스럽기는 해도 정치적 다양성이 오늘의 발전된 대한민국이 되게 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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