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올챙이처럼 볼록 튀어나온 배는 허리위에 출렁거렸다. 무거워보이는 머리와 얼굴에 눌러 붙어 있는 듯한 납작코, 아무리 씻어도 지저분해 보이는 거무튀튀한 피부, 몸에 비해 크고 투박한 손과 발, 심하게 휜 다리, 길이가 다른 두 팔, 사팔뜨기 눈, 지저분한 콧수염, 이런 볼품없는 외모는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외모보다 더 큰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까지 숭숭 빠져 있어, 그나마 새어나오는 웅얼거림조차 도대체 무얼 뜻하는지 도통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솝이 웃음을 터뜨리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누런 이만 드러내고 웃는 이솝의 얼굴을 보고 ‘크산토스’의 제자들은 괴물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로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꼭 감자에 이만 붙여 놓은 것 같지 않은가?” 노예상은 노예 한명을 사면 이솝을 덤으로 준다는 정도였다. 마을사람들은 그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로 여겼고, 주인은 이솝을 늘 밭으로 내몰아 온 하루를 농사일이나 거들도록 하였다. 종국에는 그가 노예 신분에서 풀려났니자만, 누명을 씌운 델포이인들은 손에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솝은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인간성이 보여주는 모든 현상에 대해 올바른 이유를 부여했다. 또한 신중하고 현실적이며 자제심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다. 쓸데없이 말대꾸하지 않고, 강자에게 아첨하거나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지혜로 대항 했다. 어떠한 권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솝은 삶을 너무 초월한 사람이다. 사치스런 자들의 얕은 생각에 대해 경고하고, 불운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긍심과 삶의 가치를 회복시켜준다.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그리스의 7현인만큼이나 뛰어났던 것 같다. 플라톤은‘파이돈’에서, 철인 소크라테스가 서민의 우화를 이야기하는 이솝을 높이 평가했고, 소크라테스(소크라테스도 매우 볼품없었다고 한다.)가 이솝우화를 이용해 시를 지었다는 것은, 플라톤의 대화편에 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철하자들은 그를 위대한 우화의 아버지 이솝이 노예였다. 이는 신의 장난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참고 : 이솝우화전집. 동서출판사)

‘이솝’의 외모, 신분등을 영상화 해 보자! 이글을 읽으시는 분이 이솝과 같다면 어떤 처신을 할까? 기원전(B.C) 6세기 사람으로 알려지는 점으로 보아, 성형 등은 가히 상상도 못하는 시대, 더군다나 노예의 신분으로 멸시, 천대, 고통 등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할 때 까지 그는 조금도 비굴함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그가 자신의 생애에 사명감(使命感), 가치(價値) 등을 부여함으로 기품 있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았던 위대한 인물임을 보여 준 것이 아닐까? 만일 우리가 혐오스럽고, 괴물 같은 외모에, 노예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올바른 인격과 행복한 삶의 가치 등을 추구할 수 있을까? 이솝은 노예이기 때문에 굴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보람되고 당당하게 가꾸어간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는 뛰어난 재능과 훌륭한 인격을 겸비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같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욕망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을까? 점수 몇 점 더 받아서 판사, 검사, 외교관, 고위공직자, 의사 등이 되었다고 해서, 인간 됨됨이가 바르고, 정의로우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라고 할 수만은 없기에, 우리는 ‘이솝’의 외모, 신분, 성품, 생애 등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의 목적과 나름 무엇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지에 대하여 숙고해 보자.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전 6:12).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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