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현대인들에게 ‘온유함’(gentleness)이란 단어가 그렇게 썩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온유함이란 성격이나 태도 등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한다.

성격이 부드러워서 남에게 싫은 말을 못하는 사람, 우유부단하여 일을 맡겨도 안심이 안 되는 사람, 굽실굽실 거리며 자기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온유함이란 단어 속에서 느낀다. 온유한 것이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적자생존의 냉엄한 원리가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는 시대 가치의 반영인 듯도 하다.

자신이 남에게 유약하게 보이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경향성을 우리 모두가 다 가졌다. 주께서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고 하신 말씀마저도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사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드러운 성격을 말하지 않는다.

성령님을 모시고,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서 기대될 수 있는 후천적 성품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계셔서 우리의 심령을 가난하게 해 주시고, 우리의 심령을 애통하게 만드신다. 그리고 우리 안에 성령께서 형성시켜 주시는 성품이 온유함이다.

우리는 충동을 받으면 들짐승들처럼 난폭해 질 수 있는 성품을 보편적으로 가졌는데, 성령께서 이 난폭해지기 쉬운 성품을 통제하시고, 균형을 잡아주실 때 나타나는 성품이 온유다.

온유는 우리 주 예수님의 성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한 성품이 육화되어 예수님을 믿는 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온유이다.

예수님의 온전한 성품을 표현하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 속에 온유가 있다.

성령의 열매 9가지가 모두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드러내는 요소들이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면 성령께서 우리의 성품을 온유한 사람으로 바꾸어 주시므로 비로소 우리는 온유한 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전 된 사람이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 천국을 이루도록 섭리하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성품을 온유하게 바꾸어 놓으신다. 따라서 성령을 모시고 사는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온유함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의 온유함을 믿음의 태도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처신을 보면 나름 분별할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해 서 있는 욥은 온유한 믿음의 사람이다.

욥은 동방의 최고 부자였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엄청난 재산과 10남매나 되는 자랑스러운 자녀들, 현숙한 여인인 아내,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이 없고, 생의 모든 것을 충족시킬 조건을 두루 갖추고 살던 욥이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병든 알거지가 됐다.

떼돈이라도 하루아침에 안개처럼 사라질 수가 있다. 욥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다 없어지고, 몸에 병까지 얻어 가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기와조각으로 온 몸을 피가 흐르도록 긁어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인생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될 수 있다.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욥기1:20) 모든 것을 잃은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는 욥의 신앙적 태도를 일컬어 하나님 앞에서 온유하다고 한다.

하나님을 향해 거세게 항의하고, 고개를 쳐들고, 격하게 따지고 싶을 때, 오히려 회개하는 자와 같이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욥의 태도가 온유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욥은 입을 열어 범죄하지 않았으며, 어리석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욥1:22) 욥은 온유한 자의 기념비이다. 이런 자세를 가지는 우리를 하나님은 온유하다고 하시고, 우리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언약하셨다.

욥은 땅을 얻었다. 잃은 것의 몇 배로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셨다. 욥은 성공한 인생으로서 하나님 앞에 온유한 자로 생을 살았다. 욥과 같이 기가 막힌 상황은 아니라도 이해가 안 되는 불행, 이해가 안 되는 고통과 문제를 안고 씨름하는가?

기도를 할 힘을 잃은 채로 하나님께 따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우하실까.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꼬이며, 사나워지는가.

이때 욥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주의 신실하심과 성실하신 언약들을 소망할 것이다. 그리고 기다려 죄를 범하지 말 것이다. 지금 통곡과 괴롬과 억울함에 사무쳐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따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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