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날씨이다.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오나 보다. 이럴 때 추적추적 비라도 내리면 쓸쓸함이 밀려들기도 한다. 정호승의 시 ‘부러짐에 대하여’ 한 토막으로 우리네 삶을 반추해본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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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나뭇가지가 작고 가늘게 부러지지 않고
마냥 크고 굵게만 부러진다면
어찌 어린 새들이 부리로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하늘 높이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인간의 집을 짓는 데 쓸 수 있겠는가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인식이 팽배한 세상에서 부러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양보 ․ 이해 ․ 타협 따위의 말들은 이미 기울어진 사람이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위선일 게 분명하다. ‘그러면 그렇지!’ 라며 아니꼬운 시선이 뒤통수에 꽂힐지라도 결코 부러져서는 안 된다. 그래야 승자가 될 수 있다. 우리 시대를 풍미하는 승자들을 보라. 돈, 권력, 명성이 절로 굴러 들어오더냐.

하지만 달은 차면 기울고, 물도 차면 넘치는 법. 조물주께서 변치 않을 것 같은 세상 풍조에 시한과 경계를 두셨다는 게 기이하다. 아무리 부러지지 않고 더 버티고 싶어도 수액이 빠져나간 나뭇가지는 옛 모습이 아니다. ‘부러짐’이 무엇이겠는가? 겸손함이다. 자기 허물을 가리지 않고 실토합니다. 잠언의 말씀이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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