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로마 교회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벌이는 교회의 조치들 속에는 물욕, 탐욕, 욕심들이 가득히 담겨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방 교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다 파악하고 있었다. 과연 로마 교회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목록을 만들라고 한다면, 어린 신학생들이라도 쉽게 지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성직매매, 친족등용주의, 장기 부재, 복수임명 제도 등이었다. 성직 취임세라고 해서 첫 해 수입은 모두 다 교황에게 바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어떤 비어있는 자리에 주교나 수도원장을 임명하는 경우에, 교황이 임시직으로 허용하여 정식 임명장이 수여되기까지의 수입을 차지했다.

일반 교구 신부들은 가혹한 세금과 지독한 상납을 평신도들에게 강요했다. 일상적인 교회의 목회사역 활동마다 돈을 요구했다. 결혼식이나 서약, 세례식이나 고해성사, 기름을 바르는 예식, 매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부과되는 금품요구가 있었다. 이것을 거부하거나 송사를 진행하게 되면, 패망에 이르고 말았다. 만일 신부에 의해서 한 지역 공동체로부터 출교를 당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가족들은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축제기엘에는 특별한 헌금을 요구했고, 성지순례는 영적인 의무로 신실한 자들에게 부과되었는데 역시 순례자들에게도 금품이 부과됐다.

선구자들이 남긴 희생이 확신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에서는 성경번역자 위클리프가 1382년 신약성경을 출간했다. 교황청의 특권주의를 공격하였고, 화체설, 공로주의, 수도원주의, 성자숭배, 미사 등을 비판했다. 사후에 이단으로 정죄를 당해서, 그의 무덤이 파헤쳐졌지만, “롤라드”라고 불리우는 추종자들이 널리 확산되었다. 1458년 보헤미안 후쓰도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에서 성경을 강해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지금도 그가 처형당하는 장면이 프라하 시내 광장에 우뚝 세워져있다. 루터는 후쓰의 프라하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살았기에 그의 저술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주장들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교황의 권위에 대해서 불신하게 되었고, 교황이 주장하던 가르침에 대해서도 신뢰가 흔들렸다.

5. 지식의 확산

르네상스와 휴머니즘이 지성사회에 새로운 철학적인 전망을 제공했다. 16세기 초엽 휴머니스트들은 “원전으로 돌아가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고대 헬라어를 공부하여 그리스와 로마의 저술들을 읽게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은 학교에서 르네상스 휴머니즘으로 학습을 받았다. 종교개혁자들은 공용어이던 라틴어에 능숙했고,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하였다. 에라스무스가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을 편집하여 출판했다. 누구나 그런 고전들을 해석하여 참된 의미를 찾으려는 훈련을 받았었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책을 읽는 학습방법과 문화적인 환경을 조성해 놓았다.

지성인들의 확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다. 제조기술의 발달과 인쇄술의 향상이 이루어져서, 책이 쉽게 보급되었다. 지식에 굶주린 사람들은 책을 구입하여 탐독하였다. 루터와 칼빈 등은 저명한 저술가로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독자들이 느끼게 되는 예민한 반응을 계속적인 저술을 제공하면서 이끌어 나갔다. 사람들은 오늘날 메스 미디어를 경청하듯이 공개적인 의견을 담고 있는 책들을 탐독하였다. 예전에는 책값이 엄청나게 비쌌으나, 구텐베르크의 활자술로 인해서 매우 저렴하게 되었다. 이런 저작물의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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