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을 기해 한국교회가 하나되자는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교계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지난 8월 16일 한국교회연합(한교연)과 교단장회의가 통합해 새로 창립하는 형태의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이 출범했다. 기존 한교연 회원교단에 합동과 기감 등 몇 개 교단이 참여하는 형태였지만 마치 한국교회 전체가 하나되는 역사적인 날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기연은 막상 창립총회까지 치르고 나서 아무런 존재감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대표회장을 4명이나 선출해 놓고도 종교인 과세, 동성혼 입법 저지 등 중요한 대정부적인 활동은커녕 그런 이름의 단체가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이다. 아무리 12월 초 개최 예정인 제1회 총회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고 하나 이럴거면 뭐 하러 창립총회를 했는지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한기연을 탄생시킨 핵심은 예장 통합, 합동, 기감 3개 교단의 총회장들이다. 기감 감독회장의 경우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았지만 통합, 합동 총회장은 임기를 불과 한 달여 남겨놓은 시점에서 각 교단의 총회 허락도 받지 않고 왜 이름뿐인 한기연 창립을 서둘렀을까. 혹시 본인 재임기간 중에 한국교회를 하나로 통합했다는 그럴듯한 업적 하나 남기고픈 욕심을 떨쳐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들은 1년직인 교단장 신분으로 연초에는 한교총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한기총과 한교연의 무조건적인 통합을 압박하더니 한기총 내부에 문제가 생기자 바로 노선을 바꿔 한교연과의 통합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창립총회에서 자동으로 공동 대표회장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이분들 옆에는 한교연 회원교단이면서 한교연에 등을 돌리고 새로운 기구 창립에 앞장선 몇몇 교단 총회장들과 총무들이 합세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를 하나로 묶는다는 거창한 목표 아래 창립한 한기연은 그냥 방치된 듯 보인다. 한국교회 전체의 95% 이상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한국교회 대표기구로 부상했는데 언론 어디에서 한기연의 이름을 거론하는 데가 없다. 오히려 역사 속에 사라졌다고 일부 언론이 표현했던 기존의 한교연이 더 분주해 보인다. 한교연은 연말까지 예정된 정부지원 사업을 계속 진행하며, 종교인과세 문제로 부총리가 내방하는 등 이전과 다름없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기연이 창립총회까지 해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창립을 주도한 통합, 합동 총회장들이 지금 열리고 있는 교단 총회에서 총회장직에서 물러나기 때문이다. 본인들은 총회장에서 물러나도 내가 총회장 재임 중에 한국교회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비록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한기연이라는 일종의 ‘모델하우스’를 보여주고 총회의 인준을 유도하겠다는 깊은 의도가 엿보인다.

문제는 그렇게 탄생된 한기연이 제 구실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한국교회 보수권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한교연과 한기총의 통합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기감이 새로 들어온다 해도 친목단체인 교단장회의 소속의 몇 교단이 한교연과 통합했다고 마치 한국교회가 하나 된 것처럼 떠드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또한 이미 불참을 결정한 고신 외에 합동 등 주요 교단들도 이번 총회에서 저마다 손익계산을 따져 가입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한기연의 앞날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한기연을 만든 교단장들은 얼마 전에도 다시 교단장회의에서 만나 한국교회를 대표해 북핵 문제 대응을 위해 미 의회 방문을 추진하기로 하고, 한기총과의 통합을 위한 통합추진위원장을 선정하는 등 아무 실효성도 없는 결의를 남발했다. 이제 곧 현직에서 물러나 증경이 되실 분들이 그동안 수고했다고 덕담이나 나누고 헤어지실 일이지 후임자들에게 부담이 될 그런 결의를 또 했다는 자체가 이분들에 의해 주도된 한기연에 대한 미래마저 어둡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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