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500년전 루터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기독교복음 내용과 교회 질서의 파탄에 대항해서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교회개혁의 횃불을 들고 투쟁을 시작한지 500년이 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다며, 이벤트적인 행사에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세계교회의 개혁의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

중세교회를 닮아가는 한국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을 말할 수 있는가(?) 루터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 ‘교황의 수장권’ 문제, 교황만이 성서를 바르게 해석 할 수 있다는 ‘교황무오설’, 예수께서 제정해 주신 두 개의 성례전만을 인정하고 카톨릭교회가 임의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5개의 성례전, 이것은 성서에 기초하지 않은 것이므로 무효라고 선언했다. 또한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초대교회의 의회주의 파괴에 대해서도 공격했다.

루터가 이렇게 성서와 공의회 위에 군림하는 교황, 그리스도 대신 수장권을 주장하는 교황을 비판함으로써, 교회의 치리나, 교리, 제도의 규정은 성서로 환원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교회의 제도를 비롯한 규정, 치리가 성서로부터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말하는 한국교회가 성서만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치리하고 있는가. 오늘 한국교회는 500년 전 중세교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교회 안에서 루터가 말한 ‘오직 은총으로만’, ‘믿음만으로만‘ 교리와 제도를 만들고, 치리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 중심의 교회 규칙과 내규를 만들고, 제왕적 목회자에게 반기를 드는 교인들을 감정적으로 치리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 때문에 교회 안에서 분쟁이 끊아지를 않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자리를 맘몬으로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 그러면서 목회자와 교인들의 입에서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헌금의 액수로 ‘믿음의 척도’, ‘하나님나라의 척도’를 평가한다. 한마디로 헌금을 많이 한 사람만이 믿음이 좋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대치되는 행동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좋아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모습은, 면죄부를 판매하던 중세교회와 다른 것이 없다.

또한 목회자들의 윤리적 타락은 극에 달했다. 교인들과 부적절한 관계는 차제해 두고라도, 해외 원정까지 다니며, 목사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목사가 사랑해서 결혼한 부인을 살해하고, 부인과 사랑해서 낳은 자녀를 살해하는 일이 한국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강단에서 교인들을 향해 부모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외친다.

또한 십자가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 꼭대기에 매달려 언제 떨어져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모습이 성서와 공의회 위에 군림한 교황, 초대교회 의회주의를 무력화 한 교황과 무엇이 다른가. 사실 한국교회는 당회와 제직회, 그리고 공동의회를 불법적으로 운영하며, 자신의 성을 쌓는다.

그러면서 루터의 종교개혁을 말한다. 때문에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오류와 허점을 보지 못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이벤트적인 사업을 벌이기에 바쁘다. 한국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만 말 할 때는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기독교는 영미 교파주의가 그대로 뿌리를 내리고,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면서, 300여개의 교단을 탄생시켰다.

또한 자신의 신앙과 신학사상이 다르면, 무조건 이단 및 사이비로 규정하고, 대결한다. 한마디로 이웃교회와 이웃교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웃종교를 사탄의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한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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