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 타 선 목사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교회 문에 95개조의 고백적 고발문을 내걸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루터는 무명 승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 프로테스탄트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빼고 말 할 수 없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 ‘교황의 수장권’ 문제, 교황만이 성서를 바르게 해석 할 수 있다는 ‘교황무오설’, 예수께서 제정해 주신 두 개의 성례전만을 인정하고 카톨릭교회가 임의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5개의 성례전, 이것은 성서에 기초하지 않은 것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며, 종교개혁의 선봉에 섰다. 또한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초대교회의 의회주의 파괴를 공격했다.

당시 마그네부르그의 감독에 임명된 알프레히트가 마인츠의 감독직까지 겸하기 위해 교황에게 엄청난 뇌물을 바쳤다. 그는 지배권 내에서 면책증을 판매하는 권한을 얻었다. 그 중 반은 교황에게 상납하고, 반은 자기가 착복했다, 이것이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 도화선이 됐다.

루터의 저항은 알프레이트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리스도교의 권력구조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감독은 그 지역의 권력의 장이었다. 교황의 삼층폭이 상징하듯 교회는 모든 권력의 총체이기를 고집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그리스도가 지향했던 목표가 아니었다. 루터는 부패한 교회를 보고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종교개혁, 저항은 그리스도를 자기와 같은 숙명체로 생각하는 사람만이 단행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부패한 중세교회를 닮아가는 한국교회에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메시지이다. 루터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성격은 분명해 진다. 그것은 한마디로 ‘저항정신’이다. 불의를 보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이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권력체로서 치자할 수 없다. 언제나 섬기는 자여야 한다. 권력체화된 히에라르키 체제(성직자의 세속적인 지배제도)에 저항해야 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 안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계급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로 고백해야 한다.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중개계급으로서의 사제계층을 끼워 넣을 수 없다. 루터에게 있어, 아니 불의에 저항하는 사제와 교인들에게 있어서 종교개혁, ‘히에라르키’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했다. 루터는 그것을 ‘만인사제론’과 성서해석의 독점권 부정론으로 표출했다.

당시 교회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참담한 교리망으로 얽어매던 것을 뒤돌아보면, 루터의 종교개혁, 저항은 당연했다. 돈으로 이단에게 면죄부를 주고, 돈 없고 힘없는 목사와 단체에 이단의 올무를 씌우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성서적인 입장에서 볼 때 루터의 저항은 당연했다. 예수님은 특수계급에게 그런 특권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은, 신(神)도, 경전도 독점하며, 교인들에게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죄인으로 규정해버린 예루살렘의 패거리로부터 얼굴을 돌렸다.

저들이 백안시한 갈릴리 민중에게 직접 와서 가난한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의 거처는 분명 가난한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이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그의 언어 역시 그들의 언어였다.

그곳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이었다.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다. 이런 예수님을 중세교회는 교리화 시켜버린 것이다.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바쁜 한국교회는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렸다. 5만여 교회 중 한민족의 심음소리가 들리는 곳에 그 흔한 교회 하나 없다는데 안타깝다. 등에 져야 하는 십자가는 건물 꼭대기에 매달려 세상에 희망을 주기는커녕, 국민들의 걱정거리로 변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제 한국교회와 우리사회에서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세계목회자선교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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