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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목사]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①
황인찬 목사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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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2  15: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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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인 찬 목사

현대인은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이 '눈물, 애통'과 같은 말을 싫어할 뿐 아니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 말이나 단어가 주는 어감이 마음에 부담을 주고, 그 부담을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성경에 많은 역설이 있지만 이 말씀이야말로 기독교의 역설을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성경 말씀이 아닐까 싶다.

성경에는 눈물이나 슬픔을 표현하는 용어가 대충 9가지 정도가 있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이 사용하신 이 '애통하다'는 용어는 가장 그 강도가 높고, 그 감정이 짙은 단어에 속한다.

애통(哀慟)은 슬피 울부짖음 또는 슬퍼하고 가슴 아파함이다.

마태복음 5장4절의 애통함이 헬라어 ‘펜데오’인데 펜데오는 고통으로 몸부림칠 정도로 철저하게 탄식하고, 슬퍼함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창세기 37장에 늙은 히브리 족장 야곱이 통곡을 한다. 열두 아들 가운데서 그가 가장 사랑하던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이 행방불명이 되어 생사는 물론이고, 행방도 도무지 알 수가 없을 때, ‘죽었다.’는 형들의 거짓보고에 늙은 아버지 야곱은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땅을 치며 식음을 전폐하고, 날마다 통곡을 한다. 이렇듯 야곱의 비통함으로 통곡하는 모습이 바로 주께서 마태복음 5:4절에 사용하신 ‘애통’이다.

‘애통’의 의미가 이처럼 강하다고 해서 예수님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실 때, 우리 모두가 야곱처럼 늘 통곡하고, 울어야 복이라는 의미로 받지는 않는다. 우리가 야곱처럼 그렇게 통곡하고 울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이 말씀과 별 관계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가슴을 쥐어짜며 하늘이 무너지듯 하여 통곡하는 일은 평생에 그저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할 것이므로 이 말씀이 나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제쳐놓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의도하신 바는 무엇인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토하는 영혼의 거룩한 탄식'을 '애통'이라고 표현하신 듯하다.

하나님 앞에 우리 심령을 비우려 한다면 그에게는 반드시 애통이 따라온다. 심령을 비우지 못한다면 그는 이 “애통하는…” 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

지금부터 약 반세기 전만해도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애통하는 공동체였다. 식민지 교회의 처절함, 광복이후 너무나 가난하고 무질서하도록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눈으로 보면서 살아야했다. 게다가 6.25와 그 이후의 상황이란 그야말로 사람 사는 꼴이 아니었다.

요즘 어려움을 당하는 시리아 난민들의 모습을 TV로 보지만 그 당시 우리의 모습은 지금 그들과 비교 불가할 만큼 더 참혹하고 처참했다. 그런 형극(荊棘)의 길을 걷는 성도들이 교회에 모이면 무릎을 꿇고, 눈을 감으면 울었다.

자기 죄로 통곡하고, 불신 가족들을 위해 통곡하고, 조국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바닥과 옷을 적시며 애통의 기도를 드렸다. 눈이 붓도록 울었다. 마룻바닥의 눈물 자국이 너무 진하게 박혀 걸레로 닦아도 닦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살았다. 이렇듯 눈물로 살았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더 크고, 절대적이었다. 울어보지 않은 사람은 도무지 맛볼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가 있었다. 그 재미(?)로 울고, 더 울었는지도 모른다.

우는 것이 기독교 일 수는 없다. 애통하는 것만이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른 눈을 가진 신자들의 교회보다 젖은 눈을 가진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가 훨씬 더 은혜의 세계를 깊이 알 것은 분명하다. 오늘의 교회들에서 애통하는 눈물을 보기가 어렵다. 눈물이 메마른 애통의 극한 가뭄으로 심령들이 쩍쩍 갈라졌다. 웃음이 복음으로 들리고, 눈물은 비복음으로 들릴 정도다.

어느 신문에 실린 '유머설교 세미나' 광고를 본적이 있다. 설교자가 사람들을 웃기면 분위기가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진 회중에게 말씀을 전하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인데, 그럴 듯하다.

우는 것보다 웃는 것이 훨씬 좋다. 웃는 것보다 우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웃는 것을 좋아한다. 교회서도 즐겁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사람들이 많이 웃고, 기분 좋게 하겠다는 것이 잘못이거나 그릇됨일 것인가.

기분 좋게 웃어야 은혜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우리 모습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과 거리가 상당하다는 사실이 두렵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이미지라면 눈물이 부정적이기만 한가?

우리의 짧은 인생 중에 눈물의 소중함을 알고 경험한다. 눈물은 눈물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와 무게를 가졌다. 아무리 웃음이 우리에게 매력 있고, 즐거운 것이라도 웃음이 눈물의 깊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만일 우는 것은 저주요, 부정해야 될 슬픔이라면 그의 인생은 중요하고, 값진 가치 하나가 빠져 버린 인생일 것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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