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지금 세계는 가난과 질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선언인 ‘하나님의 나라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다’는 말을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한다면, 가난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전쟁보다도 심각한 것은 식량의 무기화이다. 성서의 경제관은 한마디로 ‘나눔’이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간의 높은 벽이 무너지고, 함께 나누며,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쁜 생명의 잔치를 참여하는 것이다.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X는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는 성경귀절을 아주 싫어했다. 그것은 이 말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편 역할을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에 머물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뜻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현재의 세상은 부자들이 행복한 세상이고, 부자들이 주인인 세상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지금 선포하고 시작하는 새 세상, 새 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고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놀랍고도, 현실적인 말을 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새나라 건설의 주체와 새 나라의 주역으로 삼은 것이다.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는 평등한 나라, 자유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 인간다운 일을 하고 인간다운 사귐을 나누는 나라가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고,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고 말했을 때, 이 말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에 함께 한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괴롬을 통해 새 역사를 열어준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온 인류는 하나될 수 있다.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남북한 민족도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만이 하나 될 수 있다. 그래서 교회를 향해 평화통일과 분단의 현장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성서는 일용할 양식의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 굶주린 세계 민족, 지금 우는 사람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아프리카와 중동을 떠나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람들은 몸은 살았으나, 영은 죽은 사람들이다. 인간성을 잃고 짐승으로 타락한 것이다.

오늘 세계가 가난하고, 우는 사람을 제처 놓고 인류는 행복할 수 없다.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 속에서만 인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고 참된 생명과 진실을 얻을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인류의 형제애를 찾을 수 있다. 또 풍부한 삶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서만 하나님나라가 시작된다.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인류는 구원을 받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하나님나라가 열린다.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의 잔치,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모든 일류를 하나님의 잔치에로 초대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긴 안에, 가정 안에, 특권적 계급 안에, 권력과 돈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켜 하나님나라 잔치에 초대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행복과 인정이 흘러넘친다. 전쟁이 없고 나와 나의 벽을 허물고 사랑이 흘러넘치는 하나님나라가 아닌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벽이 무너지고,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이 무너져서 서로 하나 되는 나라, 일치•좌절•고독•열등감 속에서 갇혀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쁜 생명의 잔치를 벌이는 나라가 아닌가. 예수님은 이런 나라를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박재순 교수가 신구약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의 책이라고 결론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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