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성경은 삶의 궁극적인 답을 얻기 위해 지혜를 구하라고 한다. 지혜란 무엇일까? 욥은 이렇게 설파한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 지혜라고(욥 28:12-28). 요한은 좀 다르게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진리라는 것이다.

요한이 말하는 ‘진리’와 욥이 말하는 ‘지혜’가 같은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요한이 말하는 진리 역시 인간이 탐구해서 얻은 진리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여 주신 진리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진리에 의해서만 자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 자유를 원한다면 진리를 구하되, 진리 안으로 녹아 들어가야 한다. ‘나’ 라는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깨져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내 삶이 진리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보증되어야 한다.

지혜의 반대편에 거짓이 있다면, 진리의 반대편에는 기만이 있다. 권력의 작동 원리는 ‘타자희생’이지만, 진리의 작동원리는 ‘자기희생’이다. 권력의 도구는 칼이지만, 진리의 도구는 사랑이다. 빌라도의 세계에서 진리(정의)는 가이사의 칼인 반면,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서 진리는 사랑이다. 권력과 권력이 날카롭게 충돌하고, 이익과 이익이 한 치의 양보 없이 겨루는 세계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메시아는 어떤 분인가? 솔직히 말하면 - 내 뜻을 굽히지 않게 해주시고, 내 팔을 강하게 해주시고, 내 발을 무쇠 같게 해주시고, 내 혀로 하늘을 두 쪽 나게 할 수 있고, 내 칼을 날카롭게 해주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십자가에 달린 무기력한 분이 아닌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신 메시아다.

이처럼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이면서 속으로 바라는 메시아는 적의 목을 베어 들고 백마 타고 오시는 분이라면, 그들에게서 진리와 정의는 사라지고 술수와 기만과 폭력만이 지배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진리는 여전히 시험거리이다. 입으로 말하는 진리와 마음으로 바라는 진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다. 기만과 술수와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빌라도에 맞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삼일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