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 문 현 미 시인
좋은 시가 있으면 잘 쓴 시도 있다. 이런 분류 기준은 주관적이긴 하지만 좋은 시는 울림이 있다. 좋은 시는 읽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훈훈한 기운을 그득하게 한다. 화려한 문학적 기교가 없어도 된다. 시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비유가 없어도 된다.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 인간 본연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으로 인해 독자의 심금에 가 닿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 불신과 갈등이 산재해 있다. 세대간, 계층간, 동서간, 이웃간, 가족간 서로 포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문명은 발달하는데 인간성은 갈수록 상실되어 가고 있다. 이런 시류에 대해 여러 모로 의견을 나누고 방안을 모색한다. 하지만 눈에 띄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 청나라 때 시인 원매는 시를 읽으면 운명이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시의 효용 가치에 대해 언급한 것인데 시가 어떤 힘이 있어서 그럴까. 시집 한 권이 커피 두 잔 값에도 못 미치는 작금의 상황에서 말이다.

시는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언어에 대한 본질 규명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과 직접 관련이 있다. 시인은 그런 언어를 재료로 최대의 가치를 창출하는 탁월한 창조 능력을 지닌 예술가이다. 어떻게 저녁의 잎이 넓을 수 있는가. 이 시는 초입에서부터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표현한다. 그러면 따뜻해지기 위해서 어찌 해야 하는가.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으면 된다고 한다. 또 “희고 깨끗한 발”도 필요하고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손과 발 그리고 말을 쓰려면 그전에 맑고 깨끗한 영혼을 지녀야 함을 알 수 있다. 시적 화자는 시의 말미에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고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고 한다. 세상 부대끼며 살면서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긍정적 자세로 바라보면 비록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라도 포용할 수 있다. 시 전체를 관류하는 정조가 참 아름답고 풍요롭다.

좋은 시는 복잡한 미학적 장치를 두지 않고도 탄생한다. 사물과 사람에 대한 가없는 사랑의 시선으로 세상에 대한 온기를 이토록 잘 전할 수 있을까. 도공이 혼과 심미안을 담아 물레질을 하듯 언어를 빚어 내는 시인의 솜씨가 참으로 능숙하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의 소리를 들으며 미워했던 누군가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쓰고 싶은 가을날이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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