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창 훈 목사

교회 개척예배를 드리고 일년쯤 지나서 목회자인 내가 하고 있는 예배와 설교의 횟수를 세어보니 심방예배까지 평균 35번의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했다. 특히 주일 낮설교를 준비할 땐 나름대로 진통을 겪으면서 힘들게 준비하게 되고 그 수고의 보람과 결실은 설교시간에 일어나는 반응과 변화되는 성도들의 삶에서 찾게 된다. 말씀을 선포할 때 울먹이면서 말씀을 듣고

설교 후에 같이 기도할 때 통곡하며 기도하고 새사람이 되고 헌신 자가 되는 것을 볼 때 설교자의 보람과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항상 좋은 반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론 냉담해지고 상처받고 힘들어서 성도들이 시험에 들거나 신앙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개척교회를 해본 목회자는 잘 알겠지만 성도들이 이삼십명 모일 때 이상할 정도로 시험이 찾아오고 교회가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십명이 넘으려고 하면 또 시험이 찾아오고 교회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물론 성도들이 연약하고 훈련되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훈련되지 않은 목회자에게 있다.
 
목회자의 가장 큰 문제는 설교의 미숙에 있다. 교회의 상황이나 문제를 따라서 계속 말씀을 준비하거나 성도들을 향해서 직설적인 표현을 하고 감정을 표출 할 때 교회는 요동을 치기 시작 한다. 특히 문제를 일으키는 성도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선포하면 개인과 교회에 시험이 찾아오거나 성도들이 실족하게 된다. 그래서 말씀을 바르게 잘 준비하되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되도록 준비해야 하고 그 다음 꼭 해야 할일은 목회자가 준비하는 말씀속에 성도들이 상처받을 부분이 있는가를 점검하고 살펴야한다. 물론 모든 말씀이 성도들과 연관은 있지만 그래도 특별히 상처받을 부분이 있는가를 세심히 살피고 점검해야한다. 팔구년전에 열심히 출석하는 새가족인데 육개월 이상 주일예배를 빠지지 않고 잘 드렸다. 교구장으로부터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렀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 다음주 주중에 삼십년을 전도해도 믿지 않던 나의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갔다 온 후 주일설교를 지옥에 대한 말씀으로 준비했다.

문제는 앞서 말한 새가족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깜빡 잊고서 말씀을 준비한 것이다. 주일 낮예배 때 열심히 설교를 하는데 아버지 장례를 치루고 출석한 새가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는데 완전히 사색이 되어 있었다. 가슴이 출렁 내려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이후로 그 성도의 얼굴을 본적이 없다. 아무리 심방을 보내고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도 대답이 없었다. 장례 치루고 위로 받으려 왔다가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부흥은 말씀으로 때리고 찌르고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랑하고 품고 용서하고 싸매고 축복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리할 때 교회는 안정되기 시작하고 새가족이 정착하고 부흥되는 역사가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동아교회 담임•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