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10월 22일에 30년전 전도사로 섬기던 화곡그리스도의교회에 담임목사로 취임한 몇 일후 시골의 동역자에게서 축하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덕담을 주고받다가 그 분이 이런 주문을 했다. “임 목사님, 앞으로 시골 미자립교회 출신 젊은 성도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그들의 십일조는 그 고향교회로 돌려주세요. 시골교회는 온 힘을 다하여 한 영혼을 양육하여 겨우 일할 정도가 되고 취직하여 십일조 생활을 하게 될 즈음 서울로 가게 되고, 결국 인간적인 이야기 같지만 고생은 시골교회, 고향교회가 하고 그 열매는 서울교회가 따는 불공정한 경우가 있습니다. 서울 교회야 성도 늘고 헌금 늘어 좋지만 그냥 바라보아야만 하는 시골 목회자의 마음이 씁쓸한 것은 사실입니다.”

필자는 깊이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은 후 마음이 방망이질 하듯하는 고통을 겪었다.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눔의 원리를 항상 가르치며 또 시골 동역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하면서 정작 그들을 위한 예산을 책정하기 못하는 것이 지금까지 도시교회들의 태도였다. 재정이 넉넉해도 그렇게 시골출신 교회출석 성도의 십일조를 보내 줄 수 있을까 하는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는 문제였으나, 그 다음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그것을 실천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사랑하는 교회의 장로님들도 기꺼이 동의하실 것임에 대한 확신도 들었다.

그렇다. 평소 생각한 대로 나누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평소의 소신이었다면 그것은 당연한 성령의 뜻일 것이고, 어떤 이유도로든지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 이와 관련된 재직들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더 나아가 필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서울에서 자립하고 있는 모든 동역자들에게도 함께 실천하자고 제안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 알듯이 오늘날 도시교회의 성장의 배경에는 누가 뭐래도 시골교회의 든든한 못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시골교회의 목회자들의 이와 같은 성실한 목양이 없었다면 과연 서울 교회 자체만으로 이런 비약적인 성장과 부흥을 이룰 수 있었을까? 아무리 물어도 그것은 아니라는 양심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성도를 양육한 교회와 목회자에게는 당연히 출석하는 교회가 그 열매를 나누어야 한다. 대도시 교회는 성도가 한명 혹은 한 가정이 늘어나고 나름대로 그들의 헌신인 있을 것이고, 시골교회는 그 십일조를 나눈다면 두 교회가 모두 행복한 열매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거부하는 대도시 교회는 윤리적 도전을 받아야 마땅하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도시에 있든 농어촌에 있든 크든 작든 서로 도와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생존과 재도약을 위해 시급한 과제이다.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함께 교회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하자면 어찌하든지 경제적 위협을 받고 있는 동역자들을 돌보고 시골교회를 살피고 개척교회들을 거들어 줌으로 함께 일어서 가는 파트너쉽을 형성하여야 한다. 만일 대도시 자립 교회들이 이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는 한국교회사의 위기에 동참하지 않는 양심적 도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나아가 미자립 농어촌 교회들의 눈물을 외면한 차가운 제사장과 레위의 손이 되었음을 자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어느 가수가 ‘시월의 마지막 날’을 노래하면서 나름대로 각자 의미를 부여하는 날이 되었지만,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이제는 내 동역자들을 어떻게든 돌아보아야겠다는 작은 마음의 실천의지의 물결을 주신 성령님께 감사한다. 같이 가야 한다. 이제는 정말 같이 가야한다. 그래야 후에 천국에서 주님앞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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