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이 제목은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라는 책(도서출판 동아시아 2016) 서문에 있는 “어려운 천국 쉬운 지옥”에서 빌려왔다. 오늘의 한국교회에 대해 양심을 거역하지 않은 상태에서 질문을 한다면, 먼저 한국교회 교역자는 몇 프로나 천국에 대해 확신이 있고, 성도들은 몇 프로나 천국 시민임을 확신하고 있는지? 양쪽 백 프로라고 믿고 싶지만 이는 인간은 알 수 없고 하나님만 알고 계신 통계 일지 모른다.

성경에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7:21)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하셨다. 이 성경말씀도 결국 기독교도들 중에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자가 당연히 있겠으나 못 들어가는 자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도 있는 가르침이다. 기독교인 중에도 형식적으로 믿는 신도들이 있을 것임을 인간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계시로 볼 수도 있다.

선교 이백년을 향해 나가는 한국교회가 겉으로는 세계적인 교회라고 자평하고, 선교사 파송을 세계 두 번째(?)로 많이 하는 나라라고 자위하지만 교회의 제일 중요한 영혼의 구원은 얼마나 확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현대 교회는 그 소명을 잊어버린 것 같은 분위기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도들의 본연의 영혼구원의 사역은 말로나 겉으로는 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기독교라는 종파를 만들어 세상의 기업처럼 거대하게 키우는 것이 곧 성장과 성공이라는 세속적 생각이 지배하는 것 같다.

오늘 날의 기독교는 세상 종교인 천주교, 불교, 유교, 회교, 민족종교, 등등의 종교 군락 속에 한 종파로서 그 교세를 키우는 세상 종파와 별 다를 게 없다. 기독교가 세상을 향해 벌이는 각종 사역은 구제와 선교와 전도, 봉사로 인한 영혼 구원이 목적인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하는 일은 거대 종교 기업을 연상케 하고 성도들의 영혼 구원은 뒷전이며, 교인들은 축복 받아 잘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 같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교회에 나가는 목적이 물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보지만, 일부는 맹목적으로 주일이 되어도 딱히 할 일이 없다보니 교회에 나가 유유상종으로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지? 도로에 다니는 교회명패를 표시한 대형 차량들의 행렬은 교인들은 모이면 놀러 다니고, 먹고 놀고 하는 단체로 밖에 보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교인들이 놀다간 장소에는 공중도덕은 실종되고 목소리 높여 떠들어 대고 쓰레기는 그대로 방치하고 떠나 버리는 눈꼴사나운 행동에 모두들 너무한다고 교회를 욕한다. 자기들끼리는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듣기에는 같은 사람들이지만 하는 행동들이 착하고 거룩한 종교인으로 보기 보다는 이질적이라 생각한다. 영혼 구원 받은 진실한 기독교도라면 세상 생활에서 타 종교인들이나 무종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지켜야 하는데 오늘의 기독교도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한(?) 것이 흠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실제 모습은 영혼 구원의 확신을 가진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홀로 있으나 단체 속에 있으나 어디에 있어도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잃지 않으므로 보여 진다. 교회에서 성도들의 제직회나, 교역자들이 모이는 교단의 회의나, 교단들이 모이는 연합회 회의도 역시 세상 정치인들의 싸움과 투쟁으로 일괄하고 있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음을 볼 때에 그 사람들 속에 영혼 구원을 이루었다고 단정 할 자 아무도 없다. 그러니 얼마나 지옥은 가기 쉽고 천국은 가기 어려운 곳인지를 스스로 보여 주는 것 같다.

교회들은 성도들을 서로 데려가지 위해 혈전을 치르고, 교회는 마천루를 지어 올려도 전도와 선교 그리고 구제는 쥐꼬리만큼 하는데 생색은 바다와 같이 내려는 심사는 두 눈을 가지고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 오늘의 교회의 저급한 자화상이다. 가진 교회들은 돈 없고 초라한 개척 도상의 교회를 무시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교회도 돈 좀 있는 자들을 포섭해 교인 만들기에 혈안이고, 중대형 교회가 들어오는 지역에는 이미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작은 교회들이 애써 양육한 성도들을 하루아침에 부자 교회라는 불렉홀에 빨려들게 한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중 대형 교회 교역자와 교인들은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억울해도 빈 교회를 바라보고 한숨짓다가 또 다른 지역에 가서 사역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교역자의 눈물은 관심도 없다. 오른편 양, 왼편 염소, 알곡과 죽정이 비유는 어려운 천국과 쉬운 지옥을 연상케 한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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