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현 미 시인

투명에 대하여 23
 _ 눈물이 섞여서

까만
아프리카 소녀

배고파서
혹은
두려워서
우는 네 눈물이

검은 색이 아니고
투명하다
함께 슬픈
황인종의 울음
내 눈물이
노란색이 아니고
투명하다

눈물이 섞여서
서로 껴안는
하나가 되는 투명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한 마디의 말로도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하여 진실함과 단순함처럼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영자 시인의 시 “투명에 대하여”가 바로 좋은 예에 해당한다. 투명하다는 것은 유리나 구슬이나 물 같은 것이 속까지 환히 비치는 경우를 말한다. 시의 제목이 “투명에 대하여”인데 시의 내용도 투명하다. 화려한 수사적 기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난해한 시어가 사용된 것도 아니다. 이 시는 그냥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것은 단순함 속에 진실함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피부색이 까만 아프리카 소녀가 흘리는 눈물이 검은 색이 아니고 투명하다는 시인의 발상이 참신하다. 일상 속에서 늘 보고 듣는 대상이지만 시인의 눈을 통해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것으로 탈바꿈한다. 즉 독일 시인 횔덜린이 시인의 눈길이 닿으면 일상의 사건이 역사가 되고 손길이 닿으면 삶의 속됨은 신화가 된다고 한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시인은 마음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밝은 귀로 대상을 듣는 존재이다. 허시인의 경우가 그렇다.


아프리카 소녀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굶주림과 어떤 두려움 때문인데 그 눈물이 검은 색이 아니고 투명하다고 보는 개성적인 시선으로 인해 시의 묘미가 살아난다. 눈물을 흘리는 흑인 소녀를 바라보는 시인의 긍휼함이 그의 슬픔에 동참하게 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관점이 황인종인 시적 화자의 눈물도 노란 색이 아니고 투명하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시의 압권은 마지막 연에서 나타난다. 황인종과 흑인종의 두 “눈물이 섞여서 서로 껴안는” 아름다운 풍경이 전개되고 결국 하나가 되어 투명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듯이 시를 통해 시인의 품과 격을 느낄 수 있다. 맑고 깨끗한 영혼을 지닌 시인이 대상에 대한 깊고 그윽한 시선으로 사랑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담금질해야 이토록 맑고 깊은 감성의 결을 지닐 수 있을까. 섬세한 서정의 결 고운 날개로 인하여 시리도록 높푸른 하늘 기슭에 닿을 것만 같다. 늦가을의 길목에서 따뜻한 명시 한 편으로 인해 마음밭이 훈훈해진다.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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