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주님은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함을 알 것이며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나타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뜨거운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교만하거나,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붙들어주며, 세워주고,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며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랑하라 명령하셨다면 우리는 마땅히 서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났다고 말하는데, 이는 거듭난 사람이면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안에 사랑의 하나님의 영이 있으면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기 위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하나 뿐인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입니다. 그 사랑의 증거로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믿는 제자들임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랑이 메말라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방법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점은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느 교회를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진실한 사랑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를 예로 들으시면서, 둘 다 탕감 받았을 때에 누가 더 탕감해준 자를 사랑하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시몬이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더 사랑할 것이라고 대답했고, 예수님은 시몬의 말이 옳다 하시면서, 사함을 많이 받은 자가 더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죄 용서함을 받은 것이 큰 것임을 알수록 다른 사람을 더욱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또 은혜를 많이 받을 것을 알수록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즉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망각한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을 받고서는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받은 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드시면서 사랑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도 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또한 우리의 의무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문제 중 하나가 대인관계 가운데 필연적으로 생기는 원한과 분노로 인한 괴로움입니다. 스스로 헤쳐 나오지 못하는 분노의 늪에서 걸어 나올수 있는 비결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원수라도 용서할 수 있는 법칙이 성경에 있는데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오늘이 되어져야 합니다.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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