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외교적 등 나라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 여기에다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은 국민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자연재해 앞에 국민들은 무력함을 느낀다. 여기에다 일부 잘못된 정치지도자와 교회지도자들은 포항지진을 ‘천심’, 즉 ‘하늘의 뜻’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 국민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쓰레기 같은 말들은 SNS를 타고 국민들에게 포저 나간다.

국민들이 포항지진을 비롯한 정치적 혼란과 이합집산, 한반도를 둘러싸고 주변강대국들의 적대적인 연이은 발언과, 북한 김정은의 계속되는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남북한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군대 입대 후 100일 휴가를 공사판에서 보낸 이준호 이병의 이야기는 얼어붙은 국민들의 마음을 녹여준다.

SNS를 통해 날아온 <첫 신병휴가를 노가다판에서 보낸 군인>이란 제목의 이야기는, 아픈 할머니만 남겨두고 입대했던 이 이병은 100일 휴가를 나와 월셋방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할머니를 돌보고, 이것도 모자라 3일을 공사판에서 보냈다, 15만원을 벌어 할머니를 병원에 데려갔다. 영양실조와 감기몸살 진단을 내린 의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도록 나뒀냐고 혀를 찼다. 이 이병은 휴가 마지막 날 밀린 가스비를 내고 남은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준 뒤 부대로 복귀했다.

얼마나 힘든 귀대이었겠는가. 군대를 가지 않은 필자 역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이병의 아름다운 미담을 통해 포항지진과 남북한 긴장고조, 여야 정치인들의 이전투구,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패닉 상태에 있는 국민들이 위로받기를 기대해 본다. 이 이병은 아픈 할머니를 두고 귀대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병은 고교 때부터 가장 역할을 했다. 엄마는 준호씨가 9살 때 이혼한 뒤 소식이 끊겼고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3년 전쯤 집을 나갔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패스트푸드점에서 밤 12시까지 청소를 한 뒤,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을 돌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일식집에서 하루 12시간씩 음식을 날랐다. 2년 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 이병은 119의 도움을 받아 인근 병원에서 혼자 장례를 치렀다.
그는 할아버지께 외식 한번 못 시켜 드린 것이 가슴 아파 그때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돼 군에 입대하게 된 이 이병은 홀로 남을 할머니를 위해 몇 달간 한 푼도 안 쓰고 모은 300만원을 입대하는 날 건넸다. 그 돈은 소식도 없던 아버지가 찾아와 가져가버리는 바람에, 할머니는 난방도 안되는 방에서 앓아누운 것이다.

백일 휴가를 마친 이 이병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이 소속된 부대 생활관 분대장을 찾아가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본부 행정관 선임하사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예의바른 이 이병에게 그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이병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부대 전체에 알려지자, 장병들이 이 이병을 돕는데 나섰다.

부대장의 지시로 선임하사와 무선반장은 준호씨 집을 찾아가 할머니를 보살폈고. 아버지 주민등록을 말소해 할머니에게 매월 12만원의 정부보조금이 지급되도록 했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를 만나 할머니를 잘 돌봐달라는 부탁도 했다. 같은 부대 350명의 장병들이 월급을 쪼개 150만원을 모금해 줬다.

하지만, 이 이병이 제대 할 때까지 할머니의 집세와 생활비로 부족했다. 선임하사는 이 이 이야기를 조선일보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벌이는 <우리이웃 -62일간의 행복나눔>의 기사를 보고 사연을 적어 보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담당 사회복지사와 연계해 20개월간 월세 생활비 등 총 840여만원을 할머니에게 지원하기로 했다. 자신을 응원하는 전우와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 이병의 병영생활은 더욱 아름다워 졌을 것이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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