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승 자 목사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는 이미 로마에 의해 평정되고 전쟁이 없는 평화(팍스)가 이루어졌다. 이 로마의 평화는 창과 칼에 의한 평화, 팍스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고 얻은 평화이며, 압제와 수탈을 강요하는 평화였다.

하지만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이런 거짓된 평화를 깨고, 진정한 평화(샬롬),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한 참 평화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인류 역사의 고통, 가난하고, 처절하며,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사무친 한과 결부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탄생은 억압과 불의에 대한 항거를 뜻한다. 그의 탄생은 요란하기는커녕 초라하기만 하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에 의해서 박해를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하려고 했다. 분명한 것은 아기 예수는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다. 갈릴리에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다가 잘난 사람들의 음해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탄생일 날 세상 사람들은 술과 환락으로 본능을 발산하며, 성탄절을 모독하고 있다.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들뜬 마음으로 성탄절을 보낸다. 여기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욕심을 버리고, 사사로운 원한과 미움을 풀고, 그리스도의 참평화와 공의를 실현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감사와 기쁨을 서로 나누면서 축복해 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실현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절망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평화와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 고통의 현장에,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또 내일의 희망을 잃어버린 노숙자가 있다. 또한 인간의 욕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세월호 유가족이 있다. 이들의 절규는 오늘도 하늘에 사무친다. 이들을 위로하지 못하는 교회, 한마디로 희망 없다.

오히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을 비난하며, 적그리스도로 규정한다. 목회자들은 이들을 비난하는 글들을 SNS를 통해 퍼 나르기에 바쁘다. 이 땅에 오늘 예수님이 오신다면, 한국교회를 향해 어떤 말씀을 하실까(?) 걱정스럽다.

성탄절의 계절, 한국교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보잘 것 없지만 누구보다 존귀한 사람들을 향해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온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지 않고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할 수 없다. 아기 예수를 맞을 자격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햇빛중앙교회•본지 후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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