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연합단체가 민들어졌다. 한마디로 분열주의자들에 의해서 분열과 갈등에 만연된 한국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한 한국교회의 내놓으라는 언론사들의 대표들과 여기에 참여하는 교단장들은 분열주의자의 퍼레이드에 극찬했다. 누가 보아도 이것은 아닌데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이 창립총회를 가지면서, 한국 기독교역사는 또 하나의 ‘분열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게 됐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인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를 비롯한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이 현존하고 있는데, 왜 또 다른 연합단체인 한교총을 만들었느냐(?)고 묻고 있다.

이것은 자리싸움과 교단장협의회에 속한 교단들이 작은교회를 향한 또 하나의 갑질을 하겠다는 분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민족 선교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교인들은 의아해 한다. 한교총을 만드는데 중심에 있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을 비롯한 대신측(구 백석), 합신측,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하나님의 성회 여의도순복음, 기독교한국침례회 등 한국 중대형교단의 총회장과 총무들이 중소작은 교단을 향해 ‘갑’질을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하게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형교단 중심의 교단장협의회는 지난 16개월동안 한교총의 출범을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결국에는 또 하나의 연합단체를 탄생시켜 한국교회 분열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들 교단은 한기총을 창립하는데 깊숙이 간여했고, 한기총과 한교연(한기연)을 분열시키는데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

이 자리에서 3개 언론사 대표들은 한교총의 출범이 역사적이라고 했다. 기념비적이라고 했다. 보수와 진보의 만남, 주요교단의 참여 등을 극찬했다. 또 하나의 분열이라는 ‘악’을 보지 못했다. 또한 중소작은교회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했다. 어찌보면 한국교회의 분열에 언론사들도 한 몫을 했다. 이에 대한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미선교사들이 가져다간 준 교파주의도 모자라 이제 한국교회는, 연합단체도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하나님 앞에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한국개신교회는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조선기독교연합회라는 이름아래 하나가 된 적이 있다. 그것은 일본 식민지 세력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교회의 분열은 태생부터가 그렇다. 영미선교사들이 물일듯이 들어와 교파주의를 뿌리내리게 했으며, 선교사들의 연합 마저도, 장로교의 갑질에 의해서 분열되었다. 성경책도, 찬송가도, 주일하교 공과도 일본제국주의 아래서부터 이미 분열되었다. 그것도 가장 큰 교단이었던 장로교에 의해서 분열되었다. 일본식민지세력은 한국기독교의 계속되는 분열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며, 이를 철저하게 악용했다. 일본국가주의에 굴복하고 신사참배를 결의해 배교행위를 서슴치 않았던 한국교회의 분열은 일제하에서, 아니 영미선교사들의 한민족 선교시작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가 연합과 일치를 이야기하고, 이웃교단을 정죄하며, 한민족의 선교를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평화적인 남북통일과 분단극복을 말 할 수 있는가. 그렇다보니 한국교회는 한민족과 유리될 수밖에 없었으며, 분단의 중심에서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말 할 자격이 없었다.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남북한 민족 간에 적대적인 관계를 조성하며, 반민족•반통일적인 모습만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분열되고,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는 한 한국교회는 한마디로 희망이 없다.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이 때 군중들이 몰려왔다. 한국교회는 가던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예수님의 ‘삶의 현장’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곳은 분단의 현장이며, 통일의 현장이다.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평화통일에 봉사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평화를 담보한다는 것을 깨닫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