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영 신 목사

오늘 교회는 세상의 빛인가. 소금인가.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삶의 현장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있는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끝없이 한국교회에 던져진 질문이다. 한국교회의 신학을 주도하는 신학자들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신학과 신앙이 경건주의와 근본주의, 정통주의에 머물러 형이상학적인 신학과 신학을 강조한 결과이다.

사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종교개혁을 강조한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내면적으로 깊게 뿌리내린 들보는 보지를 못하고, 타락한 중세교회에 맞서서 루터의 종교개혁만을 외치며, 형이상학적인 회개와 구원을 외치기에 바쁘지 않았는가. 왜 한국교회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으며, 신학이 영미 백인들의 신학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는가에 대해서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한국교회는 민족의 역사와 문화적, 사회적 상황에서 한민족이 주체가 되는 신학에 대해 몰각(沒却)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영미 백인들이 가져다가 준 경건주의와 근본주의, 정통주의 신학을 소홀히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는 보편적인 가치로 평가하고, 한민족이 처한 오늘의 상황에서 신학을 재해석 하자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현장에서 구원의 역사를 멈추지 않았다. 예수님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한마디로 성서는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책이다. 그래서 어느 목사는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그리스도인은 이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으면, 성경과 다른 하나님나라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나라운동은 이 목사의 말대로 그만큼 어렵다. 항상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를 벌여야 한다.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예수님이 계신 곳이며, 이 곳이 바로 교회이다. 예수님은 이 곳에서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다가 가진자들과 로마 권력에 의해 수난을 당하셨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다가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한국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이 활동하신 비참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없지 않는가. 호화로운 교회, 바벨탑 안에 예수님을 가두어 놓지 않았는가. 그리고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지 않는가. 다윗문화에 길들여져 ‘성전 예수’, ‘성전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린 오늘 한국교회는, 담임목사의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바쁘고, 주머니가 두둑한 교인의 주머니를 넘보기에 바쁘다. 한국교회의 악행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허물을 덥기 위해 원로목사들을 악용하는가 하면, 여성교인들을 성적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하나님나라운동에서 이탈,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질주하고 있다. 교인들은 바리새인들이 되어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떠돌이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교회애 오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과거 올챙이적의 자신을 생각하지 못한다.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도, 변화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여! 가자. 예수님이 계신 곳에 교회를 세우자. 김정은 독재정권 아래서 신음하는 북한동포의 외침, 이 체제를 떠나 이웃나라에서 국적 없이 유리방황하는 우리 동포의 신음소리, 비정규 직원들의 아우성 소리, 청소부와 연탄배달부의 외침, 아들과 딸을 바다 속에 수장시키고 아우성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외침, 지진으로 고통을 당하는 포항시민들의 외침, 미혼모라는 이유 때문에 숨어서 살아가는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한국교회는 이들이 있는 곳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한국교회여! 고통당하는 이웃을 향해 움직이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자.

예장 합동개혁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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