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반고등어

가난한 아버지가 가련한 아들을 껴안고 잠든 밤
마른 이불과 따끈따끈한 요리를 꿈꾸며 잠든 밤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껴안고 잠든 밤
소금 같은 싸락눈이 신문지 갈피를 넘기며 염장을 지르는, 지하역의 겨울밤

▲ 문 현 미 교수
삶은 어찌 보면 지구별에서 잠시 노숙하다가 떠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사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종종 배회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사람의 내면에는 정신적으로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자유로운 날개로 날고 싶어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있다. 하물며 시인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시인은 늘 고정된 것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노마드 정신으로 시를 쓰려고 한다.

박시인은 자반고등어라는 소재를 시의 제목으로 삼아 따뜻하고 정겨우면서도 가슴 저리는 슬픔이 심장을 파고드는 느낌으로 시상을 전개시킨다, 고등어는 많은 생선 가운데 흔한 종으로서 그냥 두면 쉽게 상한다. 옛날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조상들은 고등어를 먹기 위해 지혜를 발휘하여 등푸른 생선의 내장을 발라내고 소금을 켜켜이 뿌려 독에 넣어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먹곤 했다. 등이 굽어서 고등어라 이름 붙여진 생선. 서민들이 즐겨 먹던 건강 음식 중의 하나이다. 이런 자반고등어는 두 마리가 한 손 단위로 상품으로 나온다.

이 시의 재미는 자반고등어와 노숙인 부자를 동일시하여 표현한 데에 있다. 시의 비유는 원래 유사성의 원칙에서 출발한다. 그 비유가 적절할 때 독자는 시를 읽으면서 시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집이 없는 가난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체온으로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는 모습이 눈물겹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궁전 같은 집도 아니고 근사한 요리도 아니다, 그저 “마른 이불과 따끈따끈한 요리”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비록 가난하지만 그들에게는 안분하고 자족하는 마음이 있다. 이 시는 어쩌면 장자의 소요유편을 생각나게 한다. 뱁새는 깊은 숲에 둥지를 틀지만 필요한 것은 단지 나뭇가지 하나이고, 두더지는 강에서 물을 마시지만 필요한 물은 배를 채울 만한 분량 뿐이라는 것이다.

전체 1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시에서 만일 3행과 4행이 없다면 긴장미도 떨어지고 문학적 심미성도 미흡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아버지를 “큰 슬픔”에, 가련한 아들을 “작은 슬픔”에 비유함으로써 시의 밀도가 조밀해진다. 더욱이 “소금 같은 싸락눈”이 “신문지 갈피를 넘기며 염장을 지르는” 표현으로 인하여 독자의 마음에도 싸락눈이 내리고 동시에 염장이 질리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지상의 방 한 칸이 없어서 둘이서 껴 안고 있는 자반고등어 같은 그들이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따뜻한 방에 등을 대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다.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자선 냄비의 종소리가 뗑그렁거리는 계절이 다가오는데 함께 울어줄 누군가가 절실해진다. 시가 심금을 울린다는 게 이런 시로 인해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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