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고현 목사.

매섭게 몰아치는 한파는 옷깃을 더욱 여미게 만들고 있다. 온 누리에 평화가 깃든 성탄절이지만,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이웃들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바로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가 고독한 죽음에 이르는 이른바 ‘고독사’가 갈수록 증가추세에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고독사로 추정할 수 있는 ‘무연고 사망자 처리현황’분석 결과, 2012년 749명에서 2016년 1232명으로 4년 사이 무려 64%가 증가했다. 그 중에서도 65세 이상 홀로 사는 노인의 비율이 가장 높다. 더욱이 이렇게 날씨가 추운 겨울철에는 그 빈도가 높다.

이처럼 이 땅에 태어난 소중한 생명이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빈번하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와 핵가족화를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바로 사랑의 온정이 식어버린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우리나라는 누구보다 온정이 많은 민족들이 산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개인이기주의가 팽배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 이는 가끔 길거리에 쓰러진 이웃을 도운 선한 일이 뉴스에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연한 일인데도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이 사회가 온정에 메말라 버린 것이다.

고독사도 마찬가지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가정사에 관심이 없다.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초자 모른다. 오로지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데에만 목적이 있다. 과거 이웃사촌이라는 말처럼 서로 부대끼며 살아간다면 고독사가 절대로 증가할 이유가 없다. 고독사라는 말조차도 부끄러울 정도다.

문제는 사회가 변해 가는데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는데 있다. 모든 책임을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살아갈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가치가 증명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다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흥하도록 서로를 감싸주고 보듬어 주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 땅의 가장 소외된 이웃에게 먼저 손을 건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그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 그저 물질적인 것으로 환심을 사려는 행위보다는 그들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줘야 한다. 고독사가 단순히 경제적 빈곤에 의한 것일 수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아무도 곁에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더욱 외로운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진정한 이웃이 없기 때문이다. 해마다 겨울철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곤 하지만, 이를 가재 눈으로 쳐다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 년 365일 중 유독 12월에만 편중된 그들의 보여주기식 기부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것이다. 진정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라면 특정한 날이 아닌 항상 그들 곁에서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한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2017년 더 이상 이 땅에 고독사와 같은 아픈 소식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모두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자를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모른척 지나가지 않고,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준 어떤 사마리아 사람처럼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오늘 이 땅에 강도 만난 자들의 이웃이 바로 나와 너, 우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예장 보수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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