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또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우리의 아이인 신생아 4명이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목동병원서 ‘죽임’을 당했다. 성탄절을 앞두고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오늘 우리사회의 모습을 드대로 드러내 보였다는데 마음이 씁쓸하다. 누가 보아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며, 용서해서도 안되는 의료사고이다. 그렇다 있어서도 안 될 일이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높은 의료기술과 의료시설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는데 가슴 아프다. 오늘(19일) 4명의 영아에 대한 장레식을 가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죽임을 당한 4명 신생아의 울부짖음, 아우성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어른들의 잠깐의 방심과 이기주의가 낳은 신생아 살해사건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 그것은 신생가 되었든, 가난한 자가 되었든, 부자가 되었든, 인간 모두가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때문에 죽임을 당한 신생아 4명의 생명은 존엄함과 동시에 국민과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궐 리가 있다. 예수님도 천국이 아이들의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몰려오는 아이들을 제자들이 막자,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시고, 천국이 저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또한 아이들도 참여하는 평등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

이런 아이들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태어난지 얼마 안돼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것도 생명을 살린다고 자부하는 병원 의사 등 관계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용서가 안된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가 이같은 사태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죽임당한 4명의 신생아를 둘러싸고 왜 이렇게도 말이 많은가. 어린 생명은 살해당했는데 또 무슨 변명이 그렇게 많은가.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영아 4명의 살해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인간의 목숨, 인간의 생명을 하찮게 생각한 결과가 부른 참사이다. 우리는 1994년부터 2011년 사이에 일어난 가습기사건에 대해서 잊지 않고 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죽임을 당한 자와 그 가족, 그리고 가습기사건으로 살아남아서도 힘겹게 살아는 사람들의 ‘한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잃어버린 한국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돈에 눈이 먼 나머지 죽임당하는 자의 ‘한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산자들만을 향해 천국과 구원, 복음, 영적구원 등을 외치며, 교회성장에 급급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선교 130년동안 고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의 한의 소리, 온갖 잡쓰레기와 노동현장에서 사업주에 의해 고난을 당하는 노동자들의 외침, 분단과 통일의 현장서 한민족의 구원을 외치다가 0.85평 감방에서 고생하는 통일운동가의 희망의 메시지, 부모와 이웃, 그리고 의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어린이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이로인해 교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며,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하는 세태가 되었다. 하비콕스는 “교회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은 교회를 버린다”고 경고했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 경고의 메시지를 듣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참담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성탄절을 몇 일 앞두고 목동 이대병원에서 일어난 신생아의 죽임은, 인류에게 평화를 선포하기 오신 아기 예수를 십자가에 다시 못을 박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제라도 한국교회와 국민들은 죽임을 당하는 어린 아이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어린 생명들이 어른들의 욕망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오늘도 하나님은 “카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아니 우리들을 향해 네 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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