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어느 선원의 아들이 어렸을 때, 처음으로 어른들을 따라 고기잡이를 나갔다.

그는 갑판위에 엎드려 바다를 보고 있는데 문득 배 뒤쪽에 엄청나게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보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저 큰 물고기를 보라고 가리켰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에겐 이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소년에게 바다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해주었다. 이 바다 속에는 물고기처럼 생긴 괴물이 사는데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그 물고기를 본 사람은 곧 죽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때부터 소년은 다시 바다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고 감히 다시 배를 탈수도 없었다.

대신 그는 자주 바닷가에 갔는데, 그 때마다 그 큰 물고기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간혹 그가 다리 위를 걸으면 물고기가 다리 밑으로 헤엄쳐 오기도 했다. 그는 점점 이 물고기를 보는 것에 익숙해져 갔지만 감히 그 물고기에 접근하지 못했다. 이렇게 그는 한 평생을 보냈다.

늙어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그는 호기심을 견디다 못하고, 물고기에게 다가가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는 작은 배를 타고 큰 물고기를 향해 노를 저었다.

그는 물고기에게 물었다. “너는 평생 나를 따라 다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큰 물고기는 대답했다. “나는 당신에게 진귀한 보물을 주고 싶었소.” 물고기는 그의 앞에 번쩍이는 금은보화를 쏟아놓았다.

그는 말했다. “너무 늦었구나, 나는 곧 죽을 텐데.”

다음 날, 사람들은 그가 작은 배위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출처 : 루화난 지음. 허유영 옮김. 인생의 레몬차)

모처럼 생각이 나, 최춘선 목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교인들과 함께 나누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다시금 필자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에서 주위를 돌아보면, 일부 대형교회들의 재산 문제와 세습 문제 등으로 인한 파고(波高)가 몰려오고 있음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최 목사님은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정작 자신은 매서운 동장군(冬將軍) 앞에서도 무기라고는 ‘예수님’ 이름 하나뿐, 맨발로 거리며 지하철 등을 누비는데, 수백억의 땅, 수천억의 자산 등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지경이라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각자 주님께 받은 사명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사명감의 발로에서의 결실이라 해도 무엇인가 석연치 않음을 어찌 하겠는가?

물론 세속에 속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아픔의 목소리가 높아지기에, 주님영광 가리지 않도록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힘만으로도 멈추게 할 수 있을까하는 염려도 해보지만, 그리할 수도 있음에 한 가닥 기대를 걸어 보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라는 공교회성에서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최춘선 목사는 말했다. “교단은 여럿이나 교회는 하나다!” 그렇다 주님 안에서의 교회는 한 몸이요 하나다. 따라서 너무 늦기 전에 통증이 더욱 깊어지기 전에 아름답게 해소되기를 기대하며, 전도에 의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이나, 우리의 회개 역시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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