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종 문 목사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광야에서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이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사랑의 공동체, 정의 공동체, 생명의 공동체로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예언자들이 고발했듯이 억압과 수탈, 거짓과 불의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거부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의한 왕과 지배계층의 억압과 수탈 속에 신음했다. 나라를 잃고 이민족의 압제 속에서 고난당해야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의 죄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스라엘 백성의 죄는 개인의 죄가 아니다. 집단적인 죄다.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거부한 죄, 하나님의 뜻인 정의와 사랑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산 죄 등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목자를 잃은 양떼처럼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다. 2000년동안 나라 잃은 백성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예수님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알려 주었다.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의 평화”라고 천사들의 노래를 기록했다.

이 노래 속에는 예수님의 탄생 의미, 예수님의 사명이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받고 받아들이며 찬양하도록 했다.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이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도록 했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할 때 비로소 억압과 착취, 불의와 거짓이 사라지고, 전쟁과 폭력이 사라지고 이 땅에 평화가 온다. 오늘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강대국들의 적대적인 발언, 북한 김정은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실험 등등은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실종된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여기에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남북한의 적대적인 관계를 더욱 부추긴다. 한반도의 평화는 매우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일부 목회자와 신학생, 교인들은 교회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자고 한다. 당연한 말이 아닌가.

그런데 왜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 말은 일본제국주의를 거쳐 남북한이 분열된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한민족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닌지.

1천여년 동안 나라 잃고 이민족의 지배 아래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고난과 시련을 겪었던 민족에게 임마누엘의 현실로서 그리스도는 탄생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기쁜 소식, 하나님의 평화의 소식을 전해 준다.

그런데 2017년 성탄절을 앞둔 한민족의 운명은 매우 절망적이다. 국민들은 걱정한다.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소리만 외친다, 포항지진을 두고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렸다고 한다. 사회는 굳게 닫혀져 있다. 또한 남북한이 분열된 것도 모자라 동서간의 갈등, 노사간의 갈등, 계층간의 갈등을 붙추기며,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빠쁘다. 그리스도인들은 분단의 현장으로 들어가 한민족 모두에게 기쁜소식을 전하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을 전하자.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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