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아담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를 따먹고 타락했다. 여기서 ’선‘과 ’악‘은 일반적으로 좋고 나쁨을 의미한다.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의 기준을 자기자신에게 두었다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이후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등 범죄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한마디로 이것은 이기적인 자기중심적 존재로 되어 버렸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죄는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에 있다.

생명공동체운동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참된 화해의 공동체를 향한 나눔운동이다. 이것은 단순히 먹거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진정한 일치의 기쁨을 주는 하나님나라운동이다. 인간들이 이기적인 자기중심에 사로잡혀 있는 한 고통과 슬픔은 개인적인 고통과 슬픔으로 그치는 것은 물론 좌절과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생명공동체운동에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자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우리 전체의 집단적인 고통과 슬픔임을 깨닫았다. 그래야만 개인적인 좌절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역사 변혁의 주체로서, 그리고 새 시대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인 힘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인간 모두는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대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빼앗고 억압하는 부자와 특권층은 이기적 자기중심성을 통한 가해자이며, 빼앗기고 억압당하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부자와 특권층의 이기적 자기중심성에 의한 피해자이다.

예수의 생명공동체운동, 나눔운동, 사랑실천운동은 가해자인 특권을 그들의 이기적 자기중심에서 해방시켜 피해자인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화해하는 화해운동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생명공동체운동, 나눔운동, 사랑실천운동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자기 해방운동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운동으로 그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 운동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해방을 억압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거부하는 반민주적인 사회 체제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특권층과 로마군에 저항하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민권회복운동이며, 해방운동이다. 억압하고 수탈하는 사회체제를 근원적으로 혁신하는 나눔과 섬김,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운동이다. 나눔공동체운동은 성서의 경제관이기도 하다. 그런데 성서의 경제관을 오늘 한국교회가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예수님의 나눔공동체운동, 화해운동, 생명공동체운동, 사랑실천운동은 정치적이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생명, 나눔, 사랑실천운동이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해방과 사회체제의 원칙적인 혁신을 추구했던 영구적인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것은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회개를 필요로 하는 하나님나라운동이다. 한마디로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탈출하는 자기비움운동이며,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는 운동(회개)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에서 인간들은 참된 화해와 해방을 맛보고, 하나님의 임제를 경험한다. 성서의 하나님은 참된 화해와 해방에서 만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나라운동은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고, 실천해 나가는 현실적인 운동이다.

/인천 갈릴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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